몇 년 전 종영한 tvN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의 기획 의도 중 한 구절이다. 이어 한 문장으로 드라마의 배경과 등장인물을 소개한다. 갯마을은 ‘대문도 없고, 오지랖은 쩔고, 의좋은 형제마냥 음식 봉다리가 오가는 곳’, 등장인물들은 ‘만유人력이 작동하는 평균체온이 1도쯤 높을 게 분명한 뜨끈한 인간들’이다. 갯마을에서 일하고 있는 나로선 제법 공감 가는 설명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작은 마을에도 사람들은 살고 있고, 파면 팔수록 정말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참조로 드라마가 촬영된 배경 또한 내 고향,포항의 갯마을이다. 그래서 더 정감이 가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흔히 간과되는 얘기가 하나 더 있다. '갯가에 있는 마을'이라는 풀어쓰기처럼 ‘갯마을’의 알파요 오메가는 바로 ‘갯가’라는 사실. 멀리서 보면 다 비슷해 보일 갯가지만, 사실 이 세상에 똑같은 갯가는 없고, 그 갯가에 따라 갯마을의 모습도 각양각색으로 달라진다. 서해, 남해의 갯가는 주로 갯벌이고, 동해의 갯가는 주로 갯바위다. 그래서 전자에선 부녀회의 '갯벌어로'가, 후자에선 해녀들의 '나잠어로'가 활발하다. 같은 갯벌도 서해와 남해가 또 다르다. 갯벌이 큰 서해에선 연안어업이 어렵다. 물이 들고 빠지는 면적이 넓어, 배가 바다로 나가려면 짧은 시간 내에 거친 물살을 타고 먼 거리를 가로질러야 한다. 해루질을 하려 해도 뻘배가 필요하다. 갯벌이 작은 서남해는 갯벌어업과 연안어업을 병행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갯가에 따라 어구와 어법이 다른만큼, 당연히 갯가에서 나는 수산물도 다르다. 갯바위에 사는 물고기와 갯벌에 사는 물고기가 다르다는 건 어린아이도 안다. 하지만 갯벌끼리도 그럴거라상상하기란의외로 쉽지 않다. 사실 갯벌도 모래갯벌, 펄갯벌, 그리고 모래와 펄이 섞인 혼합갯벌로 나뉜다. 그리고 그 형질에 따라 수산물의 생장이 달라진다. 똑같은 사과지만, 지역마다 사과 맛이 다른 것과 같은 이치다. 취도 바닷가는 수심 6m 이내의 얕은 펄갯벌 바다다. 수심이 얕다 보니 물살은 수시로 펄진흙을 헤집고, 펄에 있던 광물과 미생물들은해수에 떠다닌다. 그래서 오취마을에서 양식된 굴은 특출 난 면이 있다.
소금 또한 갯벌에서 나는 식재료였다. 아주 오래전부터 요긴하게 쓰여왔던 식재료였던 만큼 남도의 젓갈 문화는 그 갯가의 특성을 어느 것보다 더 잘 반영하고 있다. 서해, 남해에서 담근 굴젓갈 중 이름난 것만 해도 통영거제의 물굴젓, 서산의 어리굴젓, 고흥의 진석화젓 등을 꼽을 수 있겠다. 다 같은 굴젓처럼 보이겠지만 각자 그 형태, 맛, 조리하는 방법, 먹는 방법이 다르다. 어떤 갯벌에서 어떤 방식으로 생장했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달라지는 굴의 크기, 식감, 맛에 따라 젓갈의 형태 또한 달라지는 것이다.
취도를 둘러싼 갯벌 중 가장 넓은 곳으로, 오취마을의 마을어장 중 하나이다.
오취마을에도 마을어장으로 관리하는 갯벌이 몇 개 있다. '큰개', '작은개'라고 불린다. 어촌계에서 ‘객토’하고, 정기적으로 바지락 종패를 뿌려놓는 곳이다. 패류는 봄에 산란하고, 여름, 가을에 생장하며, 겨울에 펄 깊은 곳으로 숨어든다. 햇볕이 뜨거울 때 바지락을 캐면, 펄로 파고들어 성장할 시간을 충분히 가지지 못한 치패들이 폐사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보통 바지락은 굴 철이 끝나는 초봄에 채취하게 된다. 그렇게 채취된 바지락은 수협에서 일괄 수매하는데, 수협은 어촌계장과 도매상들을 알선시켜 적정판매가를 결정하고, 도매상은 날짜를 정해 마을을 돌며 개별 어민들에게서 물건을 받아간다. 대금은 수협통장으로 들어와 공급량 대로 어민들에게 분배된다.
따뜻한 바람이 불어 들어오는 달 중 보름달이 뜨는 날, 물때로는 ‘사리’에 부녀회는 마을 갯벌로 나간다. 이를 ‘개’ 튼다고 한다. 그날은 달의 강한 인력 때문에 많은 물이 빠르게 움직인다. 물이 멀리 후퇴하고 빠르게 전진해 온다. 갯벌이 넓게 드러나기 때문에 바지락을 캐기에 딱 좋다. 물이 빠질 때 일시에 '개'로 들어가 띄엄띄엄 간격을 두고 선 후, 물을 등진 채 육지로 나오며 바지락과 각종 어패류들을 캔다. 갯벌에 빠지지 않는 최적의 자세를 갖춘 채, 짧은 호미로 빠르게 어패류를 캐서, 갯벌 위에 올라 타있는 다라이에 담는다. 부녀회에 소속되어 있지 않지만, 고령의 여성어르신들도 한둘씩 무리 지어 나오시기도 한다. ‘채취는 함께’하는 게 원칙이다. 물론 매우 합당한 이유가 있다.
‘개’ 트인 어느 날, 카메라를 들고 갯벌로 뛰어간 적이 있었다. 무조건 갯벌에 들어간다는 각오로 큼직한 장화까지 단단히 신었다. 한 여성어르신이 육지와 가까운 곳에서 조개를 캐고 계셨다. 근처로 다가가 촬영하러 왔다 말씀드리니 '더 들어가면 위험해' 하신다. 하지만 바닥은 충분히 단단했고,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부녀회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멀리서 어르신들이 점처럼 갯벌을 가로지르고 계셨으니 나라고 못 갈 일 있겠나 싶었던 것이다. 어르신들께 성큼성큼 다가가 인사드리고 카메라를 들여다봤다. 렌즈에 눈을 갖다 댄 십오 초 남짓, 그 찰나의 시간이 지난 후, 다리를 움직이려 하니, 어라? 움직여지지 않는다. 아니, 가라앉고 있었다! 심지어 움직이려고 하면 할수록 더 빠르게.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하긴. 당황한 나머지 어이없을 정도로 공허한 말이 나왔건만, 구조해 달라는 눈빛은 너무나 진솔했었나 보다. 어르신 두 분께서 웃으시면서 다가오셨다. 어르신께선 왜 가라앉지 않는 건지 참 신기했다. 내 딴엔 손을 잡아주시려나 싶었는데, 어르신의 조처는 좀 더 간결했다. 근처에 있는 문어 통발 하나를 잘라내시더니 내 옆에 툭 던져주셨다. 나는 그걸 손으로 짚어가며 겨우 빠져나왔다. 만약 손을 잡았다면 같이 가라앉았겠지. 나와도 문제였다. 혼자서 갯벌을 빠져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어르신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줄행랑치듯이 밖으로 나왔다. 다신 갯벌을 무시하지 않겠노라 속으로 여러 번 뇌까리며.
'개' 튼 날, 이곳이 '큰개'다. 부녀회 주민들이 점처럼 콕콕 박혀서 어패류, 파래 등을 채취하고 있다.
바다는 역설적이다. 풍족하지만 위험하고, 누구나 자유로울 것 같지만 사실 누구도 혼자서 활동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전통적인 공유자원(commons)이 으레 그렇듯이, 바다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자원이 아니었다. 개인의 권리가 고도화되지 않았던 하세월 동안 갯마을은 누가 어획할 것인가를 두고 끊임없이 '쟁투'해왔다. 어느 어느 어종의 회유시기에 맞춰 사방에서, 어떤 기록에선 무뢰배로 표현되기도 했던 무리들이 몰려들었고,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바다를 헤집고 떠나길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파시'가 개미떼처럼 일어났다 흩어졌다. 근린사회의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한 시도들도 꾸준히 발흥했다. ‘산림천택(山林川澤) 여민공지(與民共之)’라고 지방권력을 견제하고자 했던 중앙권력의 고충이 더해져 ‘치안’의 성격마저 띠었다. 각종 수산물에 대한 오랜 기록이 왕에게 올리는 ‘진상품’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바다자원은 토호, 부패관리, 일제자본가 등 시기마다 그 형태는 다르지만 강력한 힘을 가진 무리가 독점해 왔다. 이러쿵저러쿵 해도 결국 어장을 관리하려면 자본과 강제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러한 독점은 많은 폐해를 낳았다. 과도한 남획으로 자원이 고갈되거나, 약탈적인 어획으로 어촌이 피폐해졌다. 그러다찬탈이 특히극심했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지역 어민들로 구성된 '수산업협동조합'이 서서히 태동하게 되었고, 독점세력에 대한 민초의 지난한 저항 끝에 마침내 어장관리는 수협을 근간으로 한 근린사회의 몫이 됐다. 60년대 오취마을도 굴양식업에 대한 마을어업권을 보장받기 위해 20여년 간 투쟁한 바 있다. 그러고 보면 갯마을이 어장을 관리하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인 셈이다.
이러한 공유자원에 대한 공동체적 관리는 국유화, 사유화의 실패 모두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만큼 실현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위정자, 자본가들이 그렇게 군침을 흘려왔던 자원이라면 더더욱. 그럼에도 마을이 바다자원을 관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전 세계 곳곳에 분포한 공유자원이 그렇듯이, 자원에 대한 진입장벽이 명확하고, 공동체가 중소규모를 유지하고 있어 자율적인 규칙을 수월하게 운용할 수 있고, 규범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보이지 않는 구성원’들이 존재하는 등 공동체적 관리가 가능한 조건들이 충족된 바도 있겠지만, 아마도 인류가 아무리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관리하기엔 바다는 너무나도 광대하고 깊기 때문이 아닐까. 국가가 개입하기엔 자원이 한없이 부족했고, 그렇다고 시장논리를 채택하기엔 관리해야 할 리스크가 너무 많아 능히 감당할 시장주체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