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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Jul 12. 2024

'중간건축'은 발 디딜 곳이 없다.

 “지금까지 여기서 계획을 짜온 게 있는데, 시정이 바뀌었다고 주택공급을 반영하지 않으면 심의를 해줄 수 없다는 게 현실적으로...”

 “저희가 바꾼 게 아니고, 시민이 원하는 겁니다. 맞잖아요? 맞지 않습니까?”     


 서울시 균형발전본부장은 답답한 현장의 상황을 전달하던 성동구 도시재생팀장의 말을 날카로운 어투로 잘라냈다. 성동구청 팀장과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사무국장은 ‘시민이 원하는 것’이라는 말에 순간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쳐다봤다. 도시재생사업에 대한 서울시의 현장시찰이 진행되고 있었다.     


 “아... 그렇죠. 하지만 주택공급이 주민들 재산권 문제라서, 자치구에서 개입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거 다 아시잖아요.”     


 성동구청 팀장의 하소연을 들으며, 현장지원센터 팀장으로 옆에 앉아 있던 나는 비릿한 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선 서울시가 ‘도시재생활성화계획’을 심의하고, 확정 지어 고시해야 했다. 일찌감치 용역업체를 선정해 일이 년 동안 주민들의 중지를 모아가며 기본계획을 수립했건만, 반년이 넘게 서울시는 그 어떤 반응도 하지 않고 있었다. 커뮤니티의 동력은 서서히 떨어졌고, 실무자들은 피가 말라갔다. 천연동에서 성동구 사근동으로 이직한 지 반년이 안 된 시점이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복귀했다. 그는 아직 안 밀리고 있는 세운상가에 대해 ‘피 토하는 심정’을 느꼈다 했고, 얼마 되지 않아, ‘도시재생 재구조화’라는 문건이 도시재생사업지로 신속히 하달됐다. 도시재생활성화계획을 정비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문장이 명시되어 있었던 문건으로 서울시 공무원들은 지방선거 이후까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과 추진시책을 전달하기 어려우니 사업을 무리하게 진행시키지 말고 상황을 관망하라고 마치 선심이라도 쓰듯이 조언을 덧붙였다.     


도시재생 재구조화를 공표할 때 사용했던 대표적인 이미지이다.


 다양한 내용이 있지만 골자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 ‘활성화계획에 주택공급을 반영하지 않으면 서울시의 고시는 없다.’ 두 번째, ‘공동체를 활성화시키는 사업은 필요하지만, 서울시 시책으로 할 사안이 아니니, 자치구가 알아서 해라.’ 다만, 돈이 있다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자면, 도시재생활성화구역 내에 ‘재개발·재건축 사업구역’이나 ‘소규모주택정비사업구역’을 포함시키라는 얘기였다.          


 많은 이들이 모르겠지만, 문재인 정부는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들을 정비한 바 있다. 국가가 개입하여 공정에 안전성을 담보하는 대신, 공공의 포션을 최대한 가져가겠다는 기조였기에, 필연적으로 국가의 과도한 시장개입이라는 비난을 감내해야 했다. 쪽방촌 주민들을 재정착 시키기 위해 공공임대비율을 절반도 넘게 가져가려 했던 ‘용산 동자동 공공 재개발’이 대표적이다. ‘소규모주택정비사업’도 같은 맥락에 있었다. 주요 특징을 알기 쉽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개발규모가 작다. 보통 빌라 두 동의 필지로 재개발,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다. 구역을 지정할 필요도 없어, 조합 구성원들 간 협의만 되면 재개발 전 사전절차가 상당히 축소된다.


2. 조합 구성원들 간의 협의 기준이 재개발보다 까다롭지만, 개별조합원의 권리를 보장하는 수단도 약하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의 경우, 80%의 동의가 있으면 조합을 설립해 나머지 20%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다.


3. 사업성을 높이기 위한 인센티브가 있었다. 공공임대주택을 설계에 반영하면 연면적, 용적률, 층수제한 등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고, 저금리 융자도 지원됐다.


4. 특히 ‘소규모주택관리지역’으로 선정되면, 설계에 대한 융통성이 많이 올라갔는데, 종상향을 포함해, 기부채납을 현금으로 할 수 있거나 기간설비를 개선하는데 국가예산이 투여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인근 재개발이 되지 않는 구역, 소위 존치구역이라는 곳을 일종의 단지처럼 보고 정비할 수 있었다.          


동자동 공공재개발 조감도, 정권 교체 후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개인의 사익에 강력히 추동되는 정비사업은 대개 두 가지 양상으로 흘러간다. 개별필지가 급격하게 상가로 개발되어 근린사회의 ‘다양성의 자기 파괴’를 유발하는 ‘소규모필지개발’이거나, 더 많은 사람에게 주거공간을 팔기 위해 수많은 필지를 합쳐 시장성 있는 아파트단지를 짓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분담금을 부담할 수 없는 원주민을 쫓아내는 ‘대규모단지개발’이다. 홍대, 신촌처럼 젠트리피케이션을 지병처럼 앓는 상업지구가 되거나, 공공이란 이름을 뒤집어쓰고 엘리트들과 중산층이 결탁한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 등이 우세해지는 것이다. 정부는 소규모주택정비사업을 통해 소규모개발과 대규모개발 사이 어딘가의 개발을 도모했다.


소규모주택정비사업의 대표적인 두 유형,  자율주택정비사업과 가로주택정비사업. 보다시피 규모가 작다.


  성동구청은 대규모 재개발을 다시 시작할 수 없었다. 이미 사근동에선 지역주택조합 하나를 포함한 재개발파 셋이 각축하고 있었고, 행정이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재산권 분쟁에 휩쓸리기 십상이었다.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행정과 센터는 도시재생활성화계획에 소규모주택정비사업을 반영하기 위해 재개발 소수파들을 찾기 시작했다. 소규모주택정비사업을 도울 테니 의향이 있는 주민은 센터로 찾아오라 홍보했고, 얼마 되지 않아 기묘한 그룹이 문을 두드렸다.       


 광화문 인근에서 일하고, 강남에 살고 있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보이던 부부였다. 그들은 얼마 전 사근동의 오래된 빌라 방을 샀고, 가로주택정비사업으로 그 건물을 재건축하고 싶어 했다. 인근주민들을 모아 구역을 그려왔는데, 재미있게도 아직 준공되지 않은 빌라가 포함되어 있었다. 꽤 큰 금액이 담보로 잡혀 있었던 빌라로, 민간분양은 끝났지만 입주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짓자마자 밀자는 꼴이라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부부는 아무렇지도 않게 답변했다.           


 “분양사에서 이곳이 도시재생사업지라, 소규모주택정비 관리지역과 연계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이미 입주자들에게 설명하면서 입주가격에 반영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괜찮을 것 같아요.”      


 새 집에 들어오기도 전부터 재건축을 기대하는 현실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입주가 끝나자마자 이 신축빌라엔 ‘공공참여 가로주택정비사업 선정’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사근동이 소규모주택정비관리지역으로 선정되었을 때도 축하 현수막을 걸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경축현수막은 곧 다른 주민들과 경쟁하는 현수막으로 교체되었고, 3년이 지난 지금, 빌라의 구성원들은 더 거대한 재개발의 구렁텅이에 휩쓸려 있다. 지금은 기약마저 없는. 부동산 투기열풍 앞에선 이 도시에 이 근린사회가 어떻게 정비되어야 올바를지 고민하는 ‘중간건축’은 발 디딜 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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