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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Jul 05. 2024

'인프라 전략'이라는 배의 침몰

 이명박 서울시장이 구도심에 대한 대규모 재개발사업인 ‘뉴타운’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참여정부는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어줬다. 참여정부는 이명박 시장에게 청와대 자리를 내주었고, 뉴타운사업은 후임 서울시장인 오세훈이 이어받았다. 뉴타운사업으로 은평구 진관동, 성북구 길음동 등 일부 지역은 가히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더 많은 사업지가 실패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조합원이 되어야 할 주민들에게 돈이 없었으니.     


 당시에도 재개발은 폭력과 절친이었고, 갈등, 분열, 부조리가 수많은 근린사회에 휘몰아쳤다. 대표적인 사건을 꼽아 보라 하면, 그 악명 높은 ‘용산참사’가 되겠다. 이 시기, ‘시민운동의 인프라’를 깔고 있던 시민운동의 지도자 중 대표자 격이 서울시장에 출마했고,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무언가 부조리한 권력자 이명박, 오세훈에 대한 시민운동가로의 정치적 경쟁, 그리고 훗날 더 검증될 터인 ‘양보의 정치인’ 안철수의 지지에 큰 힘을 받았다. 명실공히 ‘인프라 전략’이라는 배가 국가 제도로 나아가는 대항로에 올랐던 순간이었다.     


 어느 정도 숙고의 시간을 가진 후, 서울시는 마침내 ‘시민운동의 인프라’를 탑재한 마을만들기 정책사업을 ‘도시재생’이라는 이름으로 깔았다. 참여정부 이후 마을만들기 정책사업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도시재생’이라는 꼴을 갖춰가고 있었고, 서울을 제외한 다른 지역은 이미 도시재생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었다. 여러모로 서울시는 후발주자라 할 수 있었지만, 누가 봐도 헤비급 주자였다. 그것도 압도적인. 이제 시민운동의 인프라가 깔리는 정도는 그 규모와 전개양상에서 전과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      


 서울시는 뉴타운이 실패한 곳을 도시재생사업지로 선정했다. ‘서울역 고가도로’, ‘세운상가’, ‘성수동’, ‘창신·숭인동’, ‘백사마을’ 등 굵직굵직한 재개발 이슈의 격전지에 ‘시그니처’ 사업을 구상하고 인재와 자원을 배분했다. 그리고 주민의 의지가 확인된다면, 재개발이 어렵지만 환경정비가 필요한 서울 곳곳의 다세대·다가구·단독주택 밀집지에도 사업을 확대했다. 이제 주민들은 자신이 사는 동네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을 합쳐 ‘마을관리기업’을 설립하고, 도시재생사업으로 정비되는 각종 거주 인프라를 관리해야 했다.     


(위) 용산참사와 (아래) 서울로 7017, 도시 개발에 대한 여러 관점이 필요하지만, 한 때, 급격한 도시화에 쉽게 동조한 건 아닐지 성찰해야 한다(출처 : 뉴시스, 연합뉴스).


 나는 대학원을 졸업한 후 서대문구 천연동에서 도시재생사업의 첫 커리어를 쌓았다. 천연동은 작지만 똘똘한 재래시장인 ‘영천시장’ 뒤편, 다세대·다가구주택이 빽빽이 모여 있는 곳으로,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모든 과정의 학교는 물론, 인근 독립문,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등 역사적 건축물들이 소재한, 소위 ‘생활SOC’가 잘 깔린 곳이다. 아파트 장벽에 둘러싸여 있는 형세로, 길 하나 건너면 종로구의 서울 대장아파트, ‘경희궁자이’가 있고, “야 이 새끼들아. 높은 곳에 지어야 청와대에 잘 보일 거 아니냐”는 ‘금화시민아파트’ 단지가 일찍이 안산 능선 따라 조성되어 내려와 있었다. 부동산 투기열풍을 태풍으로 비유하자면 이곳은 태풍의 눈이라 할 수 있겠다.     


 몇 년 전, 인근엔 ‘경희궁롯데캐슬’이 들어섰다. ‘옥바라지현장’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던 곳으로 신학생들이 ‘구본장’이라는 재개발구역 내 마지막 남은 건물에 거주하며 철거를 몸으로 막아내려던 곳이기도 했다. 철거 반대 기도회에서 기도자가 대표기도를 하자마자, 공사장 가림벽 뒤에서 들려온 원망 반, 울음 반 섞인 찬성파 주민들의 비난은 당시 내 마음을 몹시 당혹스럽게 했었다. 결국 어느 정도의 폭력이 투여된 후 거대 아파트 단지로 변모했다. ‘옥바라지’라는 옛 흔적은 ‘독립운동가 가족을 생각하는 작은집’이라는 궁색하고 조촐한 부속 건물로 남았다.     


 천연동 주민들은 내심 아파트 단지를 부러워하긴 했지만, 오랫동안 살아온 곳을 더 살기 좋게 만드는데 호의적이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주민들이 상정한 천연동의 핵심문제는 ‘주쓰’였다, ‘주’차장과 ‘쓰’레기. 아파트단지의 경우, 지하를 까내 주차장을 확보하고, 단지 내 어딘가에 공동쓰레기장을 조성하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이나, 대부분의 다세대·다가구주택밀집지는 그렇질 못했다. ‘천연충현도시재생사업’은 골목골목마다 깨끗하게 유지되는 공동쓰레기장을 세우고, 주민들로 구성된 쓰레기장 관리업체를 만들고자 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싶을 수도 있지만, 골목에 사는 주민들의 멤버십에 기반한 ‘최신식 소규모 공동쓰레기장’이다. 복합용도를 가진 건물 내부 한 켠에 공동쓰레기장이 들어가고, 항시 청결을 유지하기 위한 최신식 쓰레기 처리 설비들이 들어간다. 응당 국가가 처리해야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민들이 사장님이 되어야 하는 다소 이상한 사업구조였지만, 당시 나에겐 재개발 문제를 투쟁으로 다루려는 강인함이 없었다. 운동의 주변인으로서 눈 가리고 아웅 하며 참여할 바에, 다소 이상적이더라도 주민들과 함께 손에 잡히는 일을 하며 도시환경정비과정을 차근차근 밟아 가는 게 좋았다.      


천연충현도시재생활성화계획의 핵심목표였던 마을관리소 내부.


 문재인 정부 시기, 부동산시장이 크게 출렁이고 있었으나, 나에겐 먼 얘기였다. 조선일보의 어떤 인턴기자가 천연동 주민을 몰래 취재하고, 일부 이야기를 곡해해 이곳도 재개발해야 한다는 기사를 냈지만, 사업에 있어 소소한 해프닝도 되지 않았다.       


(위)옥바라지 철거 저지 현장과 (아래)최신식쓰레기장을 도입하기 위해 주민들이 진행한 캠페인 현장(출처 : 연합뉴스).

 

 언젠가 천연동에서 따릉이를 타고 종로를 가로지르는 퇴근길에 친구를 만나 종로 5가 어딘가에서 술을 마셨다. 삼겹살에 소주잔을 들이켜면서 친구는 나에게 ‘주식투자’와 ‘야수의 심장’을 한참 설파했다. 돈도, 관심도 없었던 나는 친구의 말을 적당히 수긍하는 척하거나, 받아치거나, 농을 섞어 갈구거나 할 뿐이었다. 우리는 만날 때마다 항상 이런 모양새로 얼큰해질 때까지 쾌활하게 마셨다. 여전히 부동산시장은 내게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 때, 뉴스에서 서울시장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앵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불안한 눈길로 지지해 왔던 미투 운동이 진보 정권의 분위기에서 기세등등해져 있었고, 다소 (비)극적으로 권력자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나는 엄습한 불안감에 소주잔을 털어 넣으며, 이제 막 출항한 ‘인프라 전략’이라는 배의 침몰을 예감했다. 그 배에 올라탄 나의 운명을 걱정하게 된 건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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