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P Series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yumiverse Aug 04. 2020

P10-공간의 운영이란 무얼까

5길을 운영하면서 깨달은 것들

7월 30일, 드디어 길다면 긴, 2년에 걸친 5길의 여정이 끝났다. 5길을 만들게 된 이야기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 '공간'에 대해서는 아래 '이름없는스터디'에 기록을 해두었다.



뭔가 개인적인 채널에 5길의 종료와 관련된 이야기를 너무 자주 올리는 것 같지만, 이제 마지막으로 여기에 생각했던 것들을 정리하고 싶다. 5길을 운영하면서, 그리고 운영을 종료하면서 들었던 많은 부족한 점들은 이름없는스터디의 멤버들이 토론 결과에서 모두 이야기 해주었지만- 그래도 나의 생각을 한 번 정리해보려고 한다.

(Special thanks to ALL of 토론 참여자!)


5길을 준비할 때 - 모든 인테리어는 우리가 스스로 했다
마지막 문 닫기전의 5길 - 안쪽의 짐은 다음 사람에게 인계할 것들




#1. 공간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날 때, 많은 것을 고려한다. 만나러 이동하는 데에는 얼마나 걸릴까, 만나서 무얼 할까, (좀 이율배반적일 수는 있지만) 만나고 나서 무엇을 남길까 등등. 공간도 마찬가지이다. 공간을 하나의 사람으로 생각해보자.


내가 그 공간을 가는 데에 얼마나 걸릴까

그 공간에서 무엇을 할까

공간에서의 경험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될까


이 3가지에서 중요도는 뒤로 갈 수록 커지게 된다. 예를 들어 강남에서 회사를 퇴근하고 합정에 있는 5길에서 열리는 마케터 스터디에 간다고 치자. 


강남에서 출발해서 5길을 가기 위해서는 대략적으로 1시간의 시간을 잡아야 해

거기에서 마케터들이 모여 주제를 가지고 토론하는 모임이 있군

그 경험이 내 업무에 도움이 될거 같은데?


'내 업무에 도움'이라는 가치가 더욱 중요하게 여겨진다면, 1시간의 거리는 가장 먼저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된다. '토론하는 모임'이니까 토론을 할 것이라는 생각은, 그 '가치'가 중시되면 그 모임이 정말 토론이 될지, 강연이 될지, 그냥 일상 소소하게 수다 떠는 모임이 될지 중요하지 않게된다.


5길에서 많은 사람이 좋아하던 것은 이 문구들
5길의 오픈파티 사진은, 2년 간 5길의 블로그, 홈페이지, 구글설문 헤더 등 고루고루 사용된다


결국, '공간에서의 경험 가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 '가치'가, 대상이 되는 고객, 참여자, 심지어는 같이 놀기만 하는 사람에게라도 중요한 의미가 된다면 사람들은 공간을 찾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같은 공간에 모이는 사람은 그 '가치'를 공유하게 된다. 요즘 힙하다는 카페에 간 사람은 그 '힙함'을 느끼는 가치를 위해 그 곳에 방문한 것이고, 그곳에 찾아온 사람들은 그 '힙함'이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백화점을 간 사람은 백화점의 다양한 '상품 구성'과 '고급 브랜드'라는 가치를 보러가는 것이고, 그곳에 간 사람들은 그 가치를 유사하게 느끼고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2019년 초, 처음의 배치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아는 이 배치가 된다


공간은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이 모이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가치'를 제공해야 어떤 '공간'이라는 곳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가치는 공간에 따라 다르고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일 수도 있어 정확하게 어떤 가치라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사람을 만날 때 생각하는 6하원칙에서 'Why'라는 부분을 가치로 준비해둔다면 공간의 가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준비가 명확하다면- COVID-19와 같은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가장 오래가고 성공적(!)인 '5길로오길' 프로그램 - 술을 공부(?)하고 마시는 모임


#2. 공간의 Why란 무엇으로 만들 수 있을까

공간의 Why는 위에 쓴 것처럼 어떤 특정한 것이라고 찝어서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토론 결과에서 나왔던 특색, 베네핏, 특징 등등을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중요도 낮은 순서부터 나열해보고자 한다.


1) 공간의 개성

공간의 향이나 컬러와 같은 인테리어, 준비되어 있는 어메니티 등이 가장 기본이 아닐까 싶다. 물건을 판매하는 곳이라면, 판매하는 상품 그 자체, 디스플레이, 이동 동선 등도 포함이 된다. 다만 이 '개성'이라는 것은 다른 곳과 차별화 두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특히 소상공인을 살리는 IKEA와 코스트코의 물품이라면 눈에 보이는 비주얼은 개성적일 지 모르지만 마음에서 느껴지는 것은 전혀 개성적이지 않다). 만일 공간이 고정된 테이블과 의자 등으로 되어 있지 않고, 공간의 활용에 따라 변신이 가능한 유연성이 있다면 그것도 개성의 한 조각(...)은 될 수 있다.


2) 공간의 베네핏 

공간은 사람이라고 했다. 사람을 만나면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정말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헌신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공간도, 그 공간을 찾았을 때 '베네핏'이 있어야 한다. 그 공간이라는 '가치'에 맞는 베네핏을 지속적으로 제공해준다면, 다른 곳에서 유사한 '베네핏'을 만났을 때 그 공간을 연상하도록 하게 할 수 있을 것이고, 결국 그 공간을 다시 찾게 할 수 있을 것이다.


3) 공간은 오프라인

많은 공간이 오프라인과 함께 온라인 활동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하다못해 인스타그램 계정이라도 하나 운영하게 마련이고, 이런 온라인의 활동을 오프라인으로 옮겨오려는 시도도 많이 한다. 하지만 결국 '공간'은 시작부터 끝까지가 '오프라인'이다. 이 오프라인에서 위의 1)과 2)를 기본적으로 제공하면서, 오프라인만의 '특징'이 있어야 한다. 공간의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같은 직업군들이 모이는 공간이라면 네트워킹을, 제품이나 서비스를 파는 공간이라면 커뮤니케이션(여기서 커뮤니케이션이란 단순히 음성, 문자 교류가 아닌 '인터랙션' 혹은 '인게이지먼트'를 의미한다) 같은 것도 공간이 '오프라인'이기 때문에 보여줄 수 있는 특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4) 공간에도 콘텐츠

공간에서의 콘텐츠란 우리가 알고 있는 콘텐츠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1)에서 3)을 아우르면서, '공간' 자체가 콘텐츠가 되는 것을 말한다. 요즘 멤버십의 공간이나 프로그램이 많은데, 이것도 공간의 콘텐츠가 될 수 있다. 멤버십으로 공간에 방문하는 사람들을, 혹은 공간과 사람을 엮어주고, 결국은 그런 사람들이 다시 공간을 방문하게 할 'Why'를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스타벅스의 'My Starbucks Rewards'를 생각해보자)이다. 더불어, 상주하는 공간의 관리자도 콘텐츠가 될 수 있다. 그 관리자가 일종의 공간의 '아이콘'으로 활동할 수 있다면, 그 공간의 'Why'가 더욱 명확해지는 것이다. 


본진(?)답게, 스터디가 역시 5길의 핵심


혼자 애니를 보거나 플스를 하기도 하고, 파티나 게임, 음악 연주, 영화까지 용도는 자유롭게


#3. (감히 만들어보는) 공간 체크리스트

위 내용을 좀 정리해서 무려, 감히 체크리스트를 만들어보았다. 공간을 운영하시는 '선배' 분들이 수없이 많은 가운데 일개 2년 동안 공간을 운영하고, 시원섭섭하게 운영을 종료하는 공간 운영자지만, 혹여 다음에 공간을 운영한다면 아래 내용부터 확인하고 셋업을 하는 것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 이 공간을 설명하는 단어가 3개 미만이다.

□ 이 공간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인테리어, 집기 등 물질적인 것)이 명확하다.

□ 이 공간을 찾아오는 사람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메시지, 의미 등 개념적인 것)이 5가지 미만이다.

□ 이 공간의 온라인 공간(채널)을 활용할 계획이 세워져 있다. 

□ 이 공간에 방문하면 혜택으로 제공할 수 있는 것이 5가지 이상, 10가지 미만이다.

□ 이 공간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엮어줄 수 있는 것(멤버십, 메일링 서비스 등)이 준비되어 있다.

□ 이 공간을 운영하는 '아이콘'인 상주 관리자가 있다.


아마 실제로 운영하다보면 이 체크리스트대로 운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공간의 운영이라는 것이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지속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하지만 가장 기본적으로 염두에 두고 시작해야할 것들이라 생각한다.


마지막 날, 모든 정리를 마치고 나가기 전에 남긴 영상




결국 공간은,


'실제로 가보고 싶다!'


...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위의 체크리스트에 5길을 대입해보면...아래와 같다.


□ 이 공간을 설명하는 단어가 3개 미만이다.
          → 3개 미만인데, 너무 넓은 개념이었다.

□ 이 공간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인테리어, 집기 등 물질적인 것)이 명확하다.

          → 명확했다. 그런데 IKEA였다. 벽 곳곳의 문구가 명확했지만, 그것 하나였다.

□ 이 공간을 찾아오는 사람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메시지, 의미 등 개념적인 것)이 5가지 미만이다.

          → 5가지 미만이다. 왜냐면 없었기 때문에(...)

□ 이 공간의 온라인 공간(채널)을 활용할 계획이 세워져 있다. 

          → 계획은 항상 너무나 완벽했다. 하지만 완벽한 계획 넘어 현실은 엉망이라는 점을 간과했다.

□ 이 공간에 방문하면 혜택으로 제공할 수 있는 것이 5가지 이상, 10가지 미만이다.

          → 5개도 되지 않았다.

□ 이 공간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엮어줄 수 있는 것(멤버십, 메일링 서비스 등)이 준비되어 있다.

          → 준비했었지만 부분적이었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 이 공간을 운영하는 '아이콘'인 상주 관리자가 있다.

          → 사이드잡처럼 왔다갔다 하면서 상주하지 않은 관리자다보니, '아이콘'이어도 의미는 희박했다.


그렇게, 결국 5길은 시원섭섭함을 남기고 종료되었다. 메인 운영자로 골치아픈 관리를 하지 않아도 되어 시원하지만, 한편으로는 본격적으로 제대로 운영을 해보지 못한 아쉬움도 든다. 그래도, 이런 결론이라도 얻은 것이 어디인가.


마지막으로 문을 닫으며 남긴 인스타그램 스토리




공간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다. 그리고 사람은 공간 속에서 살아간다. 집도 공간이고, 회사도 공간이다. 커피 마시러 가는 카페도 공간이고, 스터디를 위해 찾은 공유 오피스도 공간이다. 그런 곳에 사람들은 모여있다. 사람이 있는 한 공간은 미래에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다만 COVID-19와 같은 급격한 변화가 찾아오면서, 사람들은 안전한 '공간'을 찾기 시작했고, 관리가 잘 된 공간이나, 믿을 수 있는 선별된 사람만 갈 수 있는 공간으로 가고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찾는 공간은, 이런 변화 속에서도 공간의 'Why'가 명확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 'Why'는 그 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요리라던가,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경험이거나, 그곳에서만 가능한 혜택이라거나, 그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아이콘'과 같은 '뾰쪽한' 것이기 때문이다. 


5길은, 그런 뾰쪽한 것 없이 뭉툭한 것 밖에 없었다. 뭔가 있었지만, 뭔가 없었다. 실물의 5길은 사라졌지만, 내 마음 속의 "5길"은 점점더 뾰쪽해지고 있고, 더욱 뾰쪽해질 것이다.

 

집으로 온 5길 오브제, 천장에 남은 '5'의 흔적 - 그리고 마지막의 모습


너무 많이 말해서 이제 나 스스로도 좀 지겨운 감이 있지만(...)


굿바이, 5길
매거진의 이전글 P09-인천공항에 가보았다, 그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