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개의 주소, 열한 번의 나

왜 이렇게 자주 이사해요?

by 긍정

가끔은 사람들이 물었다.


“왜 이렇게 자주 이사해요?”


사실 뚜렷한 이유가 있을 때도 있었고, 없을 때도 있었다. 사정이 바뀌기도 했고,

그냥 더 나은 환경을 찾아 나선 적도 있다. 그런데 하나는 분명했다.

이사 덕분에 나는 조금씩 자라왔다.


결혼하고 처음 살았던 신혼집은 작았다. 그리고 낡았다. 계단으로 오르내리던 17평 주공아파트.

지금은 넓은 방 5개의 집에서 살고 있지만 생활은 언제나처럼 관리비 생활비를 빠듯하게 맞추며 산다.


아이가 생기면서부터는 집 고르는 기준이 달라졌다.

처음엔 엘리베이터 있음이 감동이었고, 다음엔 방이 3개라서 애기 방 줄 수 있음이 좋았다.

그리고 그다음은 신축아파트, 초품아, 상급지...

인간의 기준은 이렇게 점점 디테일해진다.


그런데, 이사를 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

떠날 때마다 아쉬움이 생긴다는 거다.

정든 동네 슈퍼마켓, 매주 커피 마시던 작은 카페, 슬리퍼 신고 가던 분식집.


하지만 또 신기하게도, 새로 이사한 동네에선 금세 나만의 루틴이 생긴다.

처음 가본 신축 아파트 단지는 너무 반짝거려서 어색했지만, 금세 적응했다.


학원가 밀집 지역으로 이사한 뒤엔 저녁마다 아이 픽업하는 부모들 틈에서 자연스레 섞이고 이사할 때마다 나는 다시 초보 주민이 된다. 처음엔 길도 모르고, 버스도 헷갈리고, 동네 마트 어디가 싼 지 검색도 해야 한다. 그런데 그 과정이 좋았다. 익숙해지고, 편해지고, 나만의 루틴이 생기면 이상하게 마음도 조금 넓어졌다.


지금 돌아보면, 우리가 머물렀던 모든 곳이 아름답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안다.


그 작고 좁았던 집이, 엘리베이터 있는 아파트가, 학원 가까운 동네가

모두 내 인생의 장면들이었다는 걸.


그 열한 개의 주소는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열한 명의 내 모습을 담고 있다.

어떤 나는 어린 아내였고, 어떤 나는 아기 엄마였고, 또 어떤 나는 아이 교육을 고민하던 엄마였다.

주소는 바뀌었지만, 나라는 사람은 점점 또렷해졌다.


그래서 말인데, 이사도 나쁘지 않다.

정든 걸 떠나야 하긴 하지만, 또 금방 새롭게 정든다.


그렇게 또 한 번의 나를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