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K로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
나는 어릴 때부터 소위 말해 ‘쎄레이더‘(쎄함+레이더)가 과하게 발달된, 직감이 강한 아이였다. 그리고 이런 직감은 종종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나를 구해주었다.
그리고 장교로 임관하고 배정받은 첫 부대에 도착한 날, 내가 처음 느낀 것은 이 부대가 내 집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에이 그걸 무슨 본능, 직감이라는 무거운 단어로 정의하냐, 그냥 네가 그 부대가 싫었던 거겠지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냥 외관이 싫다, 기분이 안 좋다 등의 느낌이 아니었다. 그냥 이곳은 절대로 내 집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여기에 절대로 오래 있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마치 부모가 남의 아이를 실수로 안으면 본능적으로 이 아이는 내 자식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처럼, 첫 부대에 도착했을 때 이 부대는 나의 집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었다.
그리고 실제로 부대에서는 굉장히 위험한 일이 일어났고,(아직은 이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 힘들다) 나의 그 이상한 직감은 이번에도 내 목숨을 구해주었다. 그 외에도 악운이라는 악운은 다 겹쳐 첫 부대를 떠나기로 결정을 내린 후, 중대장님이 말씀하셨다.
“새로운 곳에 가는 게 더 힘들 수도 있어, 거기 가서도 안 힘들 거라는 보장이 있니? 여기서 그래도 아는 사람들 얼굴 계속 보면서 군생활 마무리하는 게 나을 수도 있어 “
하지만 떠나는 게 맞다는 나의 생각은 확고했다. 불행할 거면 새로운 곳에 가서 불행할 것이고, 슬퍼도 한 곳에서 슬픈 것보다 새로운 곳, 여러 곳에 가서 슬퍼할 것이었다. 그게 내 철학이었다. 나는 계속 떠나는 사람이었다.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계속 도망쳐 봐야 나의 세계가 넓어지고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도망가서 더 상황이 안 좋아지면 어떡해?’
그러면 그 실패에서 더 배운 것들이 있으니 결론적으로 좋은 일인 것이다. 그리고 미래에 좋은 일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나는 새로 간 부대에서 행복한 일들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떠난 것이 아니었다. 미래에는 좋은 일만 있지 않는다. 미래에는 좋은 일과 나쁜 일들이 섞여 있고 이것은 이미 정해져 있는 사실이다. 다만 나는 불행할 것이라면 새로운 곳에 가서 불행할 것을 택한 것뿐이다.
최근 틱톡에서도 울 거면 파리에 가서 울고, 휴양지에 가서 바다 앞에서 울라는 밈(meme)이 돌았던 적이 있는데 비슷한 맥락이다.
울 거면 좀 새로운 곳에 가서 울어라. 울 거면 좀 근사한 데 가서 울어라, 그러면 기분이 나아질 것이다.
20대는 나와 맞는 업을 찾기 위해 방황하는 시기이고, 30대에는 그것을 키워내고, 40대에는 꽃을 피우는 시기라고 한다. 10대 때는 20대가 그렇게나 멋있어 보였는데 막상 20대가 되어보니 어쩌면 20대는 가장 볼품없고, '나'를 몰라서 고통받고, 순전히 나의 3,40대를 위해 희생하는 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슬퍼하는 20대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불행할 거면 새로운 곳에 가서 불행하라고.
그래서 나는 오늘도 새로 슬퍼할 곳을, 새로 불행할 곳을 찾아 헤맨다. 그게 내가 TCK로서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