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 사이 이어진 무언가
어릴 적 부모님께서 보내주신 피아노 학원은 그렇게 다니기가 싫어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그만뒀었는데 성인이 되고 나니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아야 되지 않나'라는 생각과 동경에서 출발하여 며칠 간의 고민 끝에 인터넷으로 전자 피아노 하나를 구매하였다.
워낙 다방면에 관심이 많아 하나의 깊은 취미보다 여러 취미들을 즐겨하는데 이번 호기심의 지속성이 얼마나 갈지 몰라 또 쓸데없는 소비를 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사지 않는 것이 더 후회될 것 같아 그냥 고! 하기로 했다. 처음 눈독 들였던 비싼 제품보다 비교적 저렴하고 후기도 많아 초보용으로 추천하는 제품으로 결정했다.
며칠 뒤 물건이 도착하여 X자 건반을 조립하고 세팅한 뒤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한 번 쳐봤다. '역시 엉망이네.. 한 달 뒤쯤에는 적당한 곡 하나 정도는 칠 수 있으려나?'라는 생각을 하며 자리를 떴다.
그날 저녁,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듣던 중이라 정확히는 듣지 못했지만 분명 엄마가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빠르게 이어폰을 뺀 뒤, 대답을 하는 동시에 엄마가 방문을 여셨다.
"OO아, 혹시 피아노 샀어?"
참! 현관문 앞에 택배 박스를 정리해 뒀는데 저녁에 내다놔야지 하고는 하루 종일 방에만 틀어박혀있었다. 산 게 맞다고 대답하기도 전에 엄마는 피아노를 보시고 최근 봤던 모습 중 가장 행복한 얼굴로 말씀하셨다.
"와~ 피아노 너무 좋아! 엄마 쳐봐도 돼?"
이내 건반을 몇 번 두드리시더니 나보다 훨씬 고운 음들을 만들어내셨다. 그 소리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예전에 잠깐 배웠었는데 하나도 기억이 안 나네. 너무 좋다..."라고 말씀하시길래 원하면 가끔 방에 와서 치고 가도 된다고 말씀드리며 사용법도 알려드렸다.
다시 혼자가 된 방에서 나는 내가 생각보다 엄마에 대해서 아는 게 많지 않다는 것에 대한 죄송함과 부끄러움을 느끼며 엄마의 인생에 대해 곱씹게 되었다.
엄마는 9명의 형제 중 장녀로 태어나셨다. 어린 시절, 학업에 대한 열망이 있었음에도 찢어지는 가난으로 충분한 학업을 이어갈 수 없었고 동시에 자신이 보살펴야 하는 아래로 8명의 어린 동생들과 철없는 부모를 챙기기 위해 이른 나이에 공순이가 되었다고 한다.
엄마는 정말로, 죽어도 그것만은 하기 싫은 일이었다고 한다. 그 시절, 경공업이 사회의 주축이 되던 시절이었기에 일자리를 구하기는 쉬웠지만 도시락을 싸들고 학교를 다니는 또래 친구들과 다르게 한창 이쁜 나이에 공장으로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이 매일같이 얼마나 서럽고 슬펐을지 나는 나이를 먹고서 엄마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평생 배운 재주가 그것뿐이라 엄마는 다른 일을 하고 싶어도 결국 다른 일이 아닌 죽어도 하기 싫었던 그 일로 평생을 자식들과 남편을 먹여 살렸다. 모두가 겪어온 IMF 또한 쉽게 피할 수 없었고, 남들처럼 아니 남들보다 더하게도 가난한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좀처럼 한 곳에서 오래 살 수 없었고, 적응할 무렵에는 다시 이곳저곳으로 이사를 다녀야 했다.
어릴 적 나는 내가 몽골 사람 같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우연히 본 티비 속 다큐멘터리에서 보여주기를 몽골에서는 게르라고 불리는 이동식 주거에서 생활하며 유목민 생활을 하는 이들이 있다고 했다. 세련된 식기나 깨끗한 화장실 따윈 없지만 그들처럼 나 또한 같은 하늘이란 자연을 매일같이 바라보며 마음에 품고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도 금방 깨달은 것이 하나 있었다. 가난은 무서운 것이라는 것. 나는 학교를 다니며 깨달았다. 회비를 내기 위해 봉고차를 타고 온 부모님을 비웃던 담임선생님과 집에 놀러 왔던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는 우리 집이 더러워 싫었다고 말했던 것과 같은 속상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천성이 밝아 슬프고 괴로울 때도 나는 나를 달래는 법을 알았고 그럴 때마다 하늘도 보고, 별도 보았다.
내게 당장 보이는 반짝이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없었지만 남들처럼 반짝이는 무언가를 두 눈에 품을 수 있음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럴 때마다 외로움이 조금은 덜어졌다.
엄마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어떻게든 가정을 지켜내 나를 지키내려했다. 그 나름의 방식대로. 그것이 현명하고 최고의 방법은 아니었을지라도. 당시의 엄마에게는 그 모든 것이 가장 최선이었음을 나이가 들어가며 나는 알았다.
그 시절에는 방과 후 돌봄 교실 같은 것이 없었기에 다들 태권도 학원과 같은 곳들을 다녔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태권도가 최고인 것 같다. 운동을 하며 체력을 기르고, 예의범절도 가르치며 그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친구도 사귈 수 있다. 아쉽게도 나는 적성에 맞지 않았을뿐더러 그 당시 태권도 학원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대신 공부로 성공하길 바라던 그 시절 많은 부모님들과 같이 나의 부모님께서도 생활비를 줄여서라도 속셈학원에 보내셨다.
이후 머리가 좀 더 커서 알게 된 사실 하나가 있었는데 그 당시 우리 집은 학원비를 충당할만한 주머니 사정이 아니었음에도 나는 다른 형제들과 함께 그 학원을 몇 년이고 다녔었다. 알고 보니 엄마가 학원 원장님께 찾아가 협상 아닌 협상 한 판을 하고 오신 것이었다.
엄마는 원장님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지금 당장 학원비를 낼 수 있는 사정이 아니다. 돈을 안 주겠다거나 떼먹겠다는 게 아니라 열심히 일해서 무조건 다 갚을 것이니 아이들이 학원에 계속 다닐 수 있게 해 달라. 부탁드리는 입장이지만 혹여나 이 사정을 아이들이 알게 된다거나 차별을 한다면 필요 없다'라는 협상을 했다고 한다.
듣고 보니 을의 입장에서 너무 당당한 요구 아닌가 적반하장인데 라는 생각과 동시에 배포가 장난이 아니네 서희의 외교담판이 이랬을까라고 잠시 딴생각들을 했는데 원장님께서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강남도 아니고 OO에서 이렇게 열정적이고 멋진 학부모님이 계신 줄은 몰랐다. 절대 그럴 일 없으니 천천히 주셔라. 아이들에게 차별 없이 가르칠 테니 맡겨달라.'
다행히 나는 좋은 학원 원장님을 만났었다. 다니는 내내 알지 못했을뿐더러 차별 따윈 일절 없었다.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그곳을 다녔다. 알았다면 아마 내가 부끄러움에 견디지 못했을 텐데 지금 생각해도 참 감사하다.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내게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던 것인지 기억들이 많이 남아있지 않지만 그중에서 엄마와 관련된 또 다른 일화가 하나 있다.
어느 날, 마트에서 장을 보고 평소 먹어보고 싶던 회전초밥을 엄마가 사주신 날이었다. 부푼 기대와는 달리 생각보다 맛이 별로였고, 값만 많이 나와 속상했던 기억이다. 같이 외식을 해본 기억도 거의 없고, 한 끼에 몇 만 원이나 나오는 외식은 더더욱이나 없었다. 남들 다 가보는 빕스나 아웃백도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그 흔한 돈가스도 썰어본 적이 거의 없어 외식값으로 이렇게 돈이 많이 나오는 일은 그저 내겐 아직 평생 없을 일 같았는데 속상해하던 내게 엄마는 한마디를 해주셨다.
"아쉬워하지 마. 이건 다 경험값이야."
그래, 경험값. 그때는 몰랐다. 그 말을 깨닫기까지, 나는 어른이 되는 과정 속에서 수많은 경험값을 치러봤고 이제는 그 말의 가치를 알게 됐다.
호기심에는 유통기한이 있다고 한다.
사는 동안 수많은 것들에 대한 호기심이 생길 것이고, 그때마다 그것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겪어보지 않고서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행동으로 옮겨 경험해 봐야 나와 그것이 맞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와 같은 적성에 대해 알게 될 것이고, 실패 또한 해봐야 한다는 것을. 사실 이때의 실패는 꼭 실패만은 아니다. 모두 경험값이다.
그래서 이제는 이전의 실패들이 마냥 씁쓸하지만은 않다. 내게는 성공 또한 기다릴 것이니. 결코 그것들의 기억에 낙담하거나 부정적이게 살아가지 않을 것이다. 엄마의 가르침을 그리 헛되이 내다 버릴 순 없으니까. 나를 위해 희생해 온 엄마의 삶과 가르침들을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을 숭고하게 받아들이고, 삶을 깨끗이 하며 보다 적극적으로 살아야 지금까지 받은 것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다하는 것일 테니.
그러니 호기심의 유통기한 다하기 전에, 그 소중한 것들이 바람처럼 사라지기 전에 붙잡아야지.
때론 거울을 볼 때마다 그녀의 어린 시절이 내게도 보이는 것 같다.
당신의 어린 시절은 어땠나요?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내가 너무 나만 알아서, 이기적이라서 죄송합니다. 그럼에도 무한한 사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생애 이런 사랑은 당신뿐이겠죠. 감사함을 마음속 깊이 새기며 살아가겠습니다.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앞으로 피아노를 칠 때마다 기억 속에서 나는 엄마의 발자취를 따라 함께 걷어볼 것 같다.
드넓은 들판처럼 많은 것을 품고, 바람처럼 자유롭고,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아이로 자라길 바랐겠지만 사실 난 들판이 아닌 잡초와도 같은 아이임을. 숲이 아닌 한그루의 나무처럼. 큰 것을 품기보다 그 안에 속한 작은 어떤 것인 아이.
들판이 되길 바랐던 그녀 또한, 잡초였음을. 그러나 그 잡초는 여태 시들지도, 바람에도 꺾이지 않았다. 끝내 지금까지 견뎌낸 그 힘을, 나는 한없이 존경합니다. 항상 나를 보며 자신을 보는 것 같다며 말씀해 주시는 말을 최고의 칭찬으로 여기며 살아가겠습니다.
이 글은 사실 제 이야기를 각색한 것인데요. 생각보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인 가족에 대한 것도 자세히 모르는 것에 부끄러움과 죄송함이 느껴졌던 일화입니다. 천천히라도 가까운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며 질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자신 있게 상대의 취향과 관심사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네요.
혹시 여러분께서 이야기 속 화자가 된다면, 여러분은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하실 건가요?
같은 주제로 또 다른 이야기를 상상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이 글은 [단편집1 - 류설의]의 두 번째 단편글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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