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닿는 곳마다 외로움이 서려있어
대학을 졸업한 뒤, 나는 일 년간 남들처럼 정신없이 취업에 매진해 봤지만 번번이 원하던 회사들 모두 서류부터 탈락하여 그 실패들이 점차 쌓이다 보니 몸도 마음도 심히 지쳐버린 상태였다. 설상가상 대학 내내 짝사랑하던 동아리 선배는 지난겨울 내가 바라던 대기업에 취업한 타 과의 후배와 사귀고 있다는 소식을 동기에게 전해 들은 뒤, 더 이상은 버틸 힘이 없어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린 채 지난 6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히키코모리처럼 지내고 있었다.
벌써 반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다니 정말 기가 막히다. 지나고 보니 시간이 참 속절없이 빠르게 흘러가버렸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방에만 틀어박혀있었다. 이전엔 무조건 삼시 세 끼를 챙겨 먹던 내가 이제는 입맛도 예전 같지 않아 하루에 한두 끼만 챙겨 먹고 있는데 그마저도 대충 밥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는 이내 다시 방에 틀어박힌 생활만을 반복했었다. 가끔씩 어머니께서 방 문 앞에 만 원짜리를 한 장씩 놓고 가셨는데 그 돈을 도저히 쓸 자신이 없어 모두 상자 안에 모아뒀었다. 지금 세어보니 24만 원 정도 되는구나..
다세포 생물인 내가 마치 단세포 생물이 된 것만 같았다. 일차원적인 삶 그 자체였으니까.
하루 중 수면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들은 주로 핸드폰만 보고 살았다. 그렇게 하루 종일 핸드폰만 보고 사는데도 연락 오는 친구들의 연락은 뜨문뜨문 답하다 결국 몇 개월이 지나버렸다. 그들의 물음에 마땅히 어떤 대답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친구들과도 서서히 멀어졌다. 현실에서 허우적대던 나는 온라인 속에서는 국가대표처럼 헤엄치고 다녔다. 그 시간들 동안 이곳이 내게는 전부였는데 시간이 점차 흐를수록 점점 말 못 할 두려움들이 나를 덮쳐오는 느낌을 받았으며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마구잡이로 나타나 그곳에서마저도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누구도 나를 쫓아오는 이 하나 없는데 말이다.
'처음 한두 달은 잠깐 쉬어가는 거니까 괜찮아'라고 스스로 타협했지만 6개월의 시간이 물 흐르듯 지나고 나니 이제는 집 밖으로 한 걸음 나서는 것조차 두려워졌다. 남들처럼 낄낄대며 시간 때우기용 재미로 보던 타인들의 삶을 보는 것이 전혀 즐겁지 않아 졌다.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조차 너무나도 괴로웠다. 분명 이런 내게 누군가는 질타도 많이 할 것이라는 걸 머리로 모르는 게 아니고,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다. 또 누군가는 '요즘 그런 청년들이 얼마나 많은데 너는 아직 어린 나이니까 정말 무수히 많은 가능성들이 네 앞에 놓여있어. 그러니 그 기회를 잡으려면 네가 움직여야 해. 그런데 바로 무언가를 엄청나게 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 조금씩만 시작해 봐.'라고 해주는 사람도 있겠지.
그런데 사실 진짜 문제는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진짜로 겁을 먹었다는 점이다.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도 있나 싶다. 기질적으로 나는 내성적인 편이 맞긴 하지만 그래도 이전엔 남들 하는 것들에 쉽사리 겁을 먹고 쉽게 발을 빼는 스타일은 아니었는데 요즘 들어서는 내가 진짜 나인지 모르겠다. 정말 낯설기도 하다. 반년이라는 시간을 넘게 남들보다 허비했으니 조금의 열정이라도 있던 이전의 나로 돌아가기 위해 가벼운 산책이라도 슬슬 시도할까 싶어 몇 번 나가봤는데 매번 실패해버렸. 5분쯤 걷다 보면, 어지럼증과 메스꺼움이 불쑥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시 집으로 돌아온 게 벌써 여섯 번이 넘었다. 그런데 이런 것마저 통제가 안된다니 진짜 나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우리 집 사람들은 원래도 과묵하고 표현이 적은 편이긴 한데 여동생이 재작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지방으로 발령이 나서 자취를 시작한 뒤부터 집안 분위기는 이전보다 더 차분하고 조용해졌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된 뒤로는 사실상 사람의 온기는 잘 찾아볼 수가 없어졌다. 부모님께서는 집에 계시든 안 계시든 별 다를 바 없이 주로 조용하게 방에만 계셨다.
대신 우리 집에 한 가지 특이한 룰이 생겼다. 부모님께서는 함께 자영업을 하시는데 항상 퇴근하시고나서 잠드시기 전인 저녁 11시까지 내 방에 들리게끔 적당한 볼륨의 크기로 TV를 틀어놓으셨는데 '대신 잘 보지도 않으시던 TV를 왜 틀어놓으신 거지? 무슨 방송을 보시는 거지?'라는 호기심이 들어 몇 번 문을 살포시 열고 거실 한 쪽을 바라봤는데 항상 만화 채널이었다. 게다가 거실에는 두 분 모두 계시지도 않으셨다. 원래도 우리는 항상 저녁밥을 먹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시간을 보내곤 했었는데 부모님께서 내가 좋아하는 만화가 무엇인지도 모르시고 어릴 적 만화를 좋아하던 내가 떠올라 그러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거실에서 들려오는 소리만으로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그냥 만화를 좋아하던 어릴 적 만화를 좋아하던 내가 떠올라 그러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거실에서 들려오는 소리만으로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래서 억지로 허벅지에 주먹을 몇 대 쳐가며 참아냈었다.
어릴 적 나의 꿈은 만화가였다. 만화만 틀어주면 눈이 초롱초롱해지고, 엄청난 집중력으로 그것만 봤었기에 부모님께서는 나를 키우는데 어려운 것 하나 없었다고 말씀해 주셨다. 살아가며 나름 모범생이었던 나는 이전까지 큰 일탈 없이 학업을 이어갔고 때때로 만화를 보며 스트레스를 풀어갔다. 문득 이번이 내 인생 중 가장 큰 일탈이자 실패라고 느껴졌으며 지난 1~2년 동안은 그토록 좋아하던 만화를 본 기억이 손에 꼽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좋아했던 만화들을 다시 보기로 했다. 만화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모든 작품들의 주인공은 작든 크든 어떠한 시련을 겪곤 하는데 나 또한 어떤 만화의 주인공이라면 지금은 시련의 시간들이겠지? 그리고 그건 아주 짧게 연출될 거야. 우리가 천재라고 여기는 모두들 사실은 지독한 노력쟁이들이라고. 그들 모두 울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실패하고 끝없이 다시 도전하고 일어설 거라고. 그리고 그 시간들도 시련의 시간들과 마찬가지로 분명 길지 않은 시퀀스로 연출될 거야.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도전부터 시작해야 하지?
며칠이 지나고 나는 다시 용기를 내 산책을 시도했다. 그렇게 5분이었던 시간들은 10분이 되고, 20분이 되다 동네 방방곡곡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때때로 자연스레 숨이 쉬어지지 않을 때도 있었고, 선선한 날씨에도 식은땀이 날 때도 있었지만 이전에 봐두었던 벤치 스폿에 달려가 다시 숨을 고르고 물을 마신 뒤 숫자 100까지 세어봤다. 빠르게 뛰어가던 심박수는 천천히 제 호흡을 따라갔으며 땀도 식은 듯하여 눈을 뜨고 나면 눈앞에 새로운 것들이 보였다.
날이 춥든 덥든 비가 오거나 눈이 오지 않는 한, 그곳에는 아침부터 저녁 먹기 전까지 주로 동네 할머니들께서 하루 반나절 이상을 앉아계셨다. '홀로 앉아계시든 여러 명이 앉아계시든 벤치는 외로울 날이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몇 달을 그렇게 동네 산책을 하며 느낀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발 길 닿는 곳마다 외로움이 서려있다는 것이었다.
노인들의 외로움과 허전함을 채우기엔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돌아가 그들이 따라잡기도, 세상이 기다려주지도 않고 자식들 또한 먹기 살기 바쁘니 그들은 적적한 집에 있느니 밖에 나와 사람들도 구경하고 다른 노인들과의 교류도 필요하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폭염이나 날이 추운 날은 마주할 때마다 심히 염려가 됐다. 이런 날은 보통 젊은 사람들도 견디기 힘든 날씨인데 외로움이란 그런 것보다 도대체 얼마나 파워가 센 것일까.
이제는 카페도 종종 들러 시간을 짧게나마 보낼 수 있어졌다. 그곳은 중장년 여성들의 성지였다. 일 년 넘도록 홀로 시간을 보내고 친구들과도 멀어진 지금, 타인들의 교류를 보며 조금씩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짧은 히키코모리 생활이겠지만 아직은 온전히 힘을 내기 어려운 상태이기도 하다. 집 안에서만 있었던 내가 이제는 동네로 활동 반경이 넓어졌을 뿐, 다른 것은 아직 크게 변한 것이 없으니까.
동네 벤치는 할머니들의 몫, 카페는 중장년 여성들의 성지.
그렇다면 할아버지나 중장년의 남성들은 어디로 발길이 향할지 궁금해졌다.
물론 사회생활을 하거나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이들은 어디든 가겠지만 나는 외롭거나 주로 혼자인 사람들의 삶이 궁금했다. 답은 간단했다.
여성과 달리 남성들이 겪는 외로움은 아무래도 동성인 내게 더 소름 끼치도록 무섭게 다가왔다. 일단 남성의 자살률은 여성의 약 두 배라고 한다. 주로 중장년 계층이며 노인 계층 또한 비율이 굉장히 높았다. 나 또한 남성이니 이런 통계가 전혀 달갑지 않았다. 즉, 남 일 같지 않았다는 말과 같다.
주된 원인들은 경제적인 이유, 분출방법의 오류, 체면치레와 같은 자존감의 무너짐 등 너무나 많겠지만 여성들에 비해 사회적으로 아직은 강요되는 압박감이 더 할 것이라고 사료된다. 여성이 존중받고 평등해져야 하는 것 또한 맞는 말이고 옳은 길이라고 믿지만 생각보다 남성이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존중받는 점이 적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보니 이러한 문제점들을 타파하기에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 남성이 아닌 여성의 시각으로 잠시 생각해 보았다. 우선, 그들의 관계 맺음이 부러워 보였다. 그들은 우리들이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끈끈하기도 쉽게 부서지기도 하지만 서로를 연결하여 지탱해 주고 서로를 밀어주는 것 같아 보이니까. 반면 남성들은 외로운 늑대들처럼 홀로 자립하고 고독하게 살아가는 느낌이 조금 더 강하다. (아, 물론 저 혼자만의 생각들이며 이것이 정답이라거나 혹은 이분법적으로 접근하여 모든 남성과 여성들이 그렇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저 지난 시간을 되짚어보며 느낀 점일 뿐이니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이러한 고찰을 하는 시간을 보내던 내게 뜻밖의 일이 발생했다.
어느 날 오전 산책을 가볍게 한 뒤, 남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공원 구석진 벤치에 앉아있던 내게 어떤 아저씨께서 말을 걸어주셨다. '청년은 아침 먹었나'라는 말에 바로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오랜만에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이라 목도 잠시 막히고, 현기증도 살짝 나서 뜸을 들이며 어눌한 목소리로 '아직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분은 내게 단팥빵과 우유 한 팩을 건네주시면서 '그럼 같이 먹지.'라고 하셨다. 살짝 의심이 들어 바로 먹지 않고 지켜봤는데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음식을 먹고도 배가 차지 않았는지 이내 작은 도시락 가방에서 점심 대용으로 싸 온 것 같은 투박한 반찬들과 함께 도시락을 해치웠다.
그가 도시락을 반 이상 비워갈 때쯤 나도 배가 고파져 빵과 우유를 조금씩 먹기 시작했는데 그는 벌써 뒷정리를 다한 상태였다. 먼저 말을 걸어놓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의심쩍던 차에 그는 무거운 입을 떼고 말을 술술 뱉기 시작했다.
"내가 말이지. 원래는 이 도시락이 점심에 먹을 도시락이었는데 사실 오늘 아침에 잘렸지 뭐야. 이 근처 빌라에서 경비원을 했는데 그동안 수많은 멸시와 무관심을 겪으면서도 때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기에 버틸 수가 있었어. 사실 어딜 가나 그렇더라고. 좋기만 한 것도, 나쁘기만 한 것도 사실 없는 것인데 말이지. 집에 가서 아내한테 뭐라 말해야 하나 하고 시간이나 때울 겸 근처 공원에서 점심이나 먹자 하고 왔는데 청년이 눈에 딱 띄었지 뭐야..." 이내 그의 목이 살짝 메면서 한참을 말을 하지 않던 차에 다시 말을 이어갔는데 나는 다 먹은 빵과 우유팩을 만지작 거리며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 근데 말이지. 사실 우리 막내아들인 줄 알았어. 내가 나이가 들었나... 눈이 침침해져서 그런지 사실 저 멀리서 우리 아들 같길래 뛰어오다 바로 앞에서 우리 아들일리가 없지.. 참 그래.. 내가 참 주책맞는구나... 싶었지 뭐야... 그놈이 나를 두고 떠난 지 벌써 3년이 지났거든. 제대하고 가족끼리 제주도 여행 한 번 가보자고 효도하겠다며 배달 일을 시작했는데 그 녀석이. 그때가 코로나 때였지. 배달을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시작을 한 거지 뭐. 우리는 하지 말라고, 하지 말라고 그렇게 뜯어말렸는데 기어코 그놈이 몰래 했더라고. 하필이면 그날 비가 엄청 오던 날이었는데 빗길에 넘어진 그놈을 누가 치고 갔더라고. 그렇게 몇 시간이고 방치돼있던 녀석이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는 숨을 옅하게라도 쉬어내며 끈질기게 버텼다는데... 우리가 병원에 도착하고 나니 바로 떠났다고 하더라고. 우리를 마지막까지 기다렸나 보더라고. "
나는 그 말을 듣고 쉬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지난 일 년간 그토록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나도 모르게 소리 없는 울음이 기어코 터져 나왔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갔고, 나는 여전히 바닥만을 바라보며 울고 있었다.
"남은 자식들과 아내를 지키려면 나는 무너질 수가 없었지. 무너지더라도 티를 내면 안 된다고 수없이 다짐을 하고 또 했지.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내게 그러더라고. '무너진걸 다시 쌓기까지 영겁의 시간이 걸릴 수도 혹은 다시 쌓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당신 혼자 그걸 견뎌내려 하지 말고 함께 하자.' 그 말을 듣고 억지로 견뎌왔던 나의 슬픔들을 비로소 온전히 비워낼 수 있는 시작을 할 수 있었지. 나는 말이지. 이렇게 청년을 만나게 된 게 참 선물 같아. 곧 있으면 우리 아들 기일인데 그 녀석이 오늘 내가 많이 힘들 것 같아서 보내준 것만 같아. 고맙네. 참 고맙소."
"... 저는... 말이죠... 아저씨가 제게 선물 같습니다.... "
"허허. 참 고맙네. 오늘은 정말 선물 같은 날이야. 정말이야." 그렇게 말씀하시며 내게 함박미소를 보이셨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머릿속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남은 말들을 꺼내보았다.
".... 실은 제가... 그동안 집에만 틀어박혀있었는데요.... 무려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다... 이제야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와봤는데... 사실 여전히 세상이 너무 무섭습니다... 그 시간들 동안 저는 저를 정말 많이 미워했고, 스스로를 돌보지 않았던 시간들이었어서... 누군가에게 제가 소중하다거나.. 선물 같다는 그런 생각들을.. 미처 하지 못했었는데요.. 그래서.. 아저씨에게 정말로 감사합니다.. 저를 귀하게 여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은 용기가 채 나지 않아 부모님께 사죄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는데요.... 저에게 용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는 내 어깨를 살짝 두드리며 이렇게 말했다.
"참 세상이 무섭지 그래. 나도 젊었을 적, 또 지금 나이 먹고 나서도 세상이 여전히 두렵고 무섭다네. 겁을 먹고 도망치는 것도 때론 삶에 필요하고, 겁이 나도 세상과 맞설 용기 또한 필요하다네. 세상을 살아가는데 연습한다고 생각하면 어떠한가? 아마 우리들은 죽을 때까지도 이 연습을 끝없이 필요할 거라네. 인생에 좋은 일들만 가득하면 참 좋겠지만.. 꽃내음도 계속 맡다 보면 어지럽기도 혹은 질리기도 하겠지. 매 순간, 모든 것이 처음 겪던 그 순간처럼 황홀하고 행복하다고 느껴지지 않을 수도 때론 익숙해져 소중하단 것을 살면서 잊어버리기도 하지. 나는 살아가며 소중한 걸 잃어보기도 또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을 얻어보기도 했다네. 자네는 어떠한가.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들의 우선순위들을 생각해 보게. 그리고 그것을 이루지 못했다고 하여 자신을 끝내 미워하지 말게. 때론 삶에 유연하게 타협하는 것도 자신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지. 무엇이든 정해진 답은 없다네. 자네가 하는 말과 행동, 결정들이 결국 자네를 이루어 자네가 될 것이라네. 그렇다면 앞으로 자네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그런 것들을 생각해 보게. 나는 자네가 정말로 행복했으면 좋겠다네. 그것만을 바라네."
"... 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항상 아저씨의 말씀들을 잊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저에게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자네를 보면 우리 막내아들이 생각나. 꼭 행복해주게. 그 애 몫까지. 나는 멀리서 청년을 응원하겠네. 진심을 다해. 온몸을 다해 말일세."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웃으며 자리를 떴다.
나는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자리에 앉아 감정을 추슬렀다. 그리고 어느 날보다도 더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향해 걸어갔다.
이 글은 어느 벤치에서 시작된 아주 조용한 관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누구에게나, 어느 시기에나 찾아오지만 누군가의 온기로 한 순간 멈출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혹시 당신이 이야기 속 화자라면, 지금 어떤 벤치에 앉아 계시나요?
그리고 그 벤치에 보이는 누군가에게 말을 걸어줄 수 있을까요?
여러분 모두의 외로움이 조금은 가벼워지길 바라며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 글은 [단편집1 - 류설의]의 세 번째 단편글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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