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엔 나도 모르는 사이 엄마를 무시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운 생각이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할 텐데, 진작에 철이 든 딸이었어야 할 텐데. 이런 때 지난 바람은 대부분의 경우 소용이 없고,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자주 화를 내는 아빠에게 대꾸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 화들을 가슴에 차곡차곡 쌓아가는 엄마의 모양이 어린 내 눈에도 훤히 보였다.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가 집안을 덮칠 때면 딸들은 구석으로 숨어들어 책으로 도피했다. 중학생이었던 내가 쓴 수필에는 이런 표현이 있었다. ‘허공을 손으로 그으면 검은 무언가가 묻어 나올 것 같은 분위기’. 그만큼 명백히 아슬아슬한 분위기에서 스스로를 방어하지도 않고, 움츠러들어있는 딸에게 설명도 하지 않는 엄마가 미운 날이 분명 있었다.
늦은 밤, 불도 켜지 않고 언니와 내가 함께 잠든 방으로 들어와 가만히 등을 토닥여주던 엄마의 손길은 그저 불쌍했다. 포근하다기보다 불안했다. 나는 잠에서 깬 티를 낼 수 없어 숨을 죽이고만 있었다. 침묵으로 항의하는 엄마가 답답하고 싫었다. 그래서 이런 다짐을 자주 했다. 나는 할 말을 조리 있게 할 수 있는, 그러고 난 뒤 벌어질 일들도 감당할 수 있는 여자가 되어야겠다고. 특히 화를 내는 남자에 대해서는. 다짐은 현재까지 절반도 성공하지 못했다. 나는 때론 남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고야 말았지만 누구보다 스스로가 그것을 두려워하는 여자로 자랐다. 게다가 그 뒤에 벌어질 일을 감당하는 것에는 더 자주 실패했다.
그는 나보다 일곱 살이 많았다. 등 뒤에 바이올린을 메고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편의점으로 들어와 쭈뼛거리며 번호를 물었다. 편의점 유리 너머로 보인 내 모습에 반해 용기 내 들어왔다고 했다. 나를 실수로 이끈 것은 꽤 보기 좋았던 그의 갈색 머리도 아니고, 늘 웃는 모양이었던 눈꼬리도 아니고, 날 위해 냈다고 스스로 얘기했던 그 용기였다. 그런 말들에 약할 수밖에 없었던 스무 살의 나는 그 순간부터 그 용기에 대한 보답으로 내 삶이라도 기꺼이 떼어 나눠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고, 무엇보다 달콤한 말들을 의심할 용기도 없었다.
그에게 삶을 떼어줘도 괜찮을 줄 알았던 것도 오로지 내가 스무 살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하필 스무 살에 그를 만났던 것이 문제였다. 스무 살이었기 때문에 남들이 다하는 실수를 나도 했다. 실수란 그와 내가 영원하리라고 전제했던 것이다. 그 풋풋함이 그리울 지경이다. 그래서 그가 다른 여자의 손을 잡고 자취방에 들어가는 것을 본 극단적인 사건을 겪은 뒤 나는 스무 살 답게 무너졌다. 그 자리에서 “네가 이걸 보지만 않았으면 우린 영원할 수 있었을 텐데”라며 되려 화를 내는 그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끝이 난 후 쓰레기가 돼버린 것 같았다. 그이거나 그와 함께 했던 시간이 아니라 여기저기 떼어진 곳 많았던 나의 삶이. 이별이 이렇게 감당하기 힘든 것이라면 두 번 다신 속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그는 나와 비슷한 부분이 많은 줄 알았던 사람이었다. 동아리에서 선후배로 만나 쓰고, 읽고, 대화를 나눴다. 남한텐 냉정했지만 내게만 다정한 모습이 좋았다. 먼저 사회에 나가 직장 생활을 시작한 것에도 흥미가 갔다. 특히나 숫자를 다루는 직업이라는 점이 특별해 보였다. 나는 편의점 시재를 매일 틀려서 시급을 까먹을 정도로 숫자에 재능이 없었다. 또 어느 새벽하늘을 보고 날 떠올렸다던 낭만에도 애가 쓰였다. 시를 좋아하는 내 청춘에 어울리는 연애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환상을 기반으로 한 유일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는 내게도 숫자를 들이대고 계산을 시작하더니 한없이 냉정해져서 나의 가난과 나의 지식과 나의 외모를 그의 잣대대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엔 다정했던 그의 마음에 들지 않게 된 것이 내 탓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내가 뭔가를 잘못해서 자꾸만 점수가 깎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 가난이, 배움이, 존재 자체가 잘못이고 이런 나를 그래도 곁에 두는 그에게 복종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또 점수가 깎일까 봐 두려워서 할 말을 속으로 삼키고 눈물만 배출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내가 되기 싫어했던 종류의 여자가 된 줄은 진작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헤어 나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자존감이 낮아질 대로 낮아져 그에게서 버림받으면 다른 어디서도 사랑받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끝은 왔다. 나는 연약하긴 해도 멍청한 여자는 아니었다. 어느 날 내게 가방을 들게 하고 앞서 걸어가며 담배를 피우는 그의 뒤에서 콜록거리다 정신을 차렸다. 이별을 말하고도 짓밟힌 나의 존재는 오랫동안 그의 발밑에서 질질 끌려다녔다. 되돌리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나는 그가 내게 했던 많은 폭언과 행동들이 가해라고 생각한다. 굳이 확장하고 싶진 않지만 가해와 피해란 그런 것이다. 모든 것이 끝나고 난 뒤에도 남겨진 것은 피해자의 몫이다. 그 발밑에서 내가 연약했음을 인정하고 안간힘을 쓰며 기어 올라오는 데에는 한참이 걸렸다.
그쯤 되자 지긋지긋해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렇게 되기 싫었던 형태로 상처 받고 있는 내 모습이 가장 지긋지긋했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강한 여자가 되고 싶었다. 얕은 수나 언젠간 깨져 버릴 환상에 휘둘리기 싫었다. 여전히 사람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것이 사랑과 감동이라고는 믿었다. 그래서 더욱 이전의 것들이 사랑이 아니었다고 확신했다. 내가 휘둘리지 않겠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또 다른 그를 만났다.
그와의 만남은 서로가 서로에게 무관심했다. 나에겐 내가 더 중요했고 그에게도 그가 더 중요했다. 그러자 상처 받는 일이 없어졌다. 의아할 정도로 감정의 기복도 없었다. 큰 소리를 내며 다투는 일은 있었지만 전처럼 속으로 마음을 삼키진 않았다. 그런 마음의 방어가 먼저 허물어진 것은 그쪽이었다. 어느 날은 다투면서도 시종일관 냉정한 내 모습에 헤어짐을 말할까 봐 두렵다며 눈물을 흘리는 그에게서 예전의 내 모습을 보았다. 오히려 그 사실이 상처가 됐다. 그래서 거의 소스라치게 놀라며 헤어짐을 말해버렸다. 잠깐 아팠지만 금방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 전보다 아픔은 덜했지만 감당하기 힘든 무언가 있었다. 중요한 걸 빠뜨린 것 같은 마음의 공허는 격렬하게 감정을 소모했을 때보다 끝 맛이 훨씬 더 썼다.
그들의 이야기가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인정해본다. 관계는 끝이 났으나 흔적이 사라질 순 없다. 나는 흔한 드라마 장면 속 여주인공이었던 적도 있었고 은근한 폭언 속에서 연약한 존재가 바스러진 적도 있었으며 그것들을 핑계로 상처를 입힌 적도 있었다. 그 흔적들을 만든 나의 모습은 내가 무시하고 답답해하고 불쌍히 여기며 닮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던 모습과 닮아 있었다. 나이를 더해가며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 것 중 가장 옳다 여기는 것은 경험해보면 알게 된 다는 사실이다. 나의 경우 경험해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로 바꿔야 할 것 같다. 약한 마음으로 살다 보니 그냥 그렇게 되었고 그 순간들에 나를 돌보는 것보다 당장 눈 앞에 닥친 것들이 버거웠다. 그것이 나의 경우는 생사와 직결된 먹고사는 문제였고 엄마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제 어떤 여자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은 그만둔 지 오래다. 아무런 소용이 없다. 아마 엄마도 진작에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저 토닥이며 밤을 지새웠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