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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교준 Nov 04. 2020

정의롭다의 실상

“사람이 서로 해치지 않게 하는 것이 정의의 역할이다.” - 키케로
“오, 하느님, 정의가 힘을 지배하게 하소서.” - 윌리엄 셰익스피어
“가장 약한 팔도 정의의 검으로서 치면 강하다.” - 존 웹스터


갑자기 찾아온 추위가 세상을 뒤덮은 저녁. 문득 ‘정의’라는 단어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남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배운 ‘착하게 살아야 한다’,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로 시작해서 영화에서 전하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메시지까지. 알고 보면 세상은 온갖 ‘정의롭다’는 말을 앞다투어 설하려는 것 같다. 그런데 정작 우리들은 ‘정의’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걸까? 정의의 여신이 무슨 손에 뭘 들고 있는지는 아는가? 


세상의 공인들이라고 인정할만한 사람들도 ‘정의’를 정의해왔다. 문제는 그 메시지들을 살펴보면 해석하는 바가 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처음 언급한 세 가지 명언들을 보면 세 명의 인물들은 정의를 각기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수사학의 대가였던 키케로는 ‘해치지 않는 것’이라고, 최고의 극작가 셰익스피어는 ‘신이 내려주시는 것’이라고, 그와 동시대 극작가인 존 웹스터는 ‘검으로 치는 것’이라고. 이처럼 지식인으로 꼽히는 인물들도 ‘정의’에 대한 공통적인 생각을 내놓지 못했다. 이는 곧 우리가 알고 있는 각기 다른 ‘정의’들이 옳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따라서 나는 앞으로 ‘정의’를 어떻게 생각해볼 수 있는지, 자신은 과연 정의로운지를 찾기 위해 몇 가지 화두를 던져보려 한다. 

 

정의의 여신


정의는 로마 신화의 유스티치아(Justitia)라는 정의의 여신으로부터 기원됐다. 그녀는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 더군다나 안대를 두르고 있기도 하다. 이에 대한 각각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저울 : 개인 간의 권리 관계에 대한 다툼을 해결하는 것
칼 : 사회 질서를 파괴하는 자에 대하여 제재를 가하는 것
안대 :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는 공평무사한 자세를 지키는 것
*출처 : 지식백과


한 마디로 그녀는 공정함을 심판한다. 우리는 그녀의 의지를 이어받아 ‘공정하게 대우하고, 공정하게 대우받기’를 통해 정의로운 삶을 실현시켜야 한다는 의미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균형을 파악하는 것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겠다. 

 

존 롤스의 정의에 대한 2가지 원칙


정의에 대해 가장 잘 정립한 사람은 미국 철학자 존 롤스다. 그는 원초적 입장(인간의 도덕적 관점)에서 정의를 생각함으로써 정당성을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사실 이렇게 말하면 어렵기만 하니, 방금 했던 말은 차치하고 그의 정의의 두 원칙을 알아보자.


[정의의 1원칙]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유와 양립할 수 있는 한에서 가장 광범한 자유에 대하여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 

 

롤스가 주장한 정의의 1원칙은 쉽게 말해 ‘자유의 원칙’이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인간으로서 가져야 하는 ‘자유’를 보장해주는 것이 바로 정의의 길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언론의 자유], [양심의 자유], [사유 재산의 자유] 등을 뜻한다. (자유에 대해 알고 싶다면 다음 글을 덧붙여 참조하면 좋다!)

https://brunch.co.kr/@rywns741/113


[정의의 2원칙]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은 다음 두 조건을 만족시키도록 배정되어야 한다.
  ㄱ.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이득 
  ㄴ. 공정한 기회균등의 조건에서 모두에게 개방된 직위와 직책이 결부되도록 하여야 한다.


두 번째 원칙은 ‘차등의 원칙’이다. 쉽게 말하자면, “열심히 일한 사람은 돈을 벌거나, 일하지 않은 사람은 돈을 많이 벌지 못한다는 것은 정당하다”는 말과 같다.(ㄱ) 단, 여기엔 조건이 있다. 바로 “공정한 기회의 균등”이다. 이는 ‘금수저’, ‘흙수저’를 나누게 되는 환경이 아니라 누구나 동등한 기회, 동등한 성공 가능성을 갖는 것을 뜻한다. 이에 따라서 지금의 한국 사회를 평해보자면, 그리 정의롭지는 않은 것 같다.

 

사람들이 말하는 ‘정의’의 의미

 

대학교 조별과제를 하면서 ‘어떻게 이토록 책임감이 없는 사람들이 있을까?’란 생각을 해본 적 있는가? 그럼 이런 생각이 똑같이 떠오르는 직장을 생각해보자. 누군가는 부서에 내려온 일을 도맡아서 처리한다. 계획을 짜고, 보고서를 만들고, 맨땅에 헤딩하며 전문적인 일을 해결한다. 어떤 이는 일이 들어와도 들은 체 만 체 하거나 가정사를 핑계로 어딘가에 숨어 전화를 하기도 한다. 심지어 이 둘은 같은 직급, 같은 담당이라고 해보자. 이 두 사람이 똑같은 급여를 받는다면, 과연 정의로운 걸까? 


채사장 작가는 <시민의 교양>을 통해 ‘정의란 무엇일까?’란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그는 정의의 정의에 대한 두 가지 입장을 가진 사람들을 대변하며 생각을 유도한다. 다음은 그들의 입장을 적용해서 위 예시에 대해 생각해 본 것이다.


“정의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하는 것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무조건적인 평등이 정의다! 


한 집단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무조건적인 평등’이 정의라고 말한다. 권력의 유무나 부의 양에서 차이가 나면 안 된다는 말이다. 가끔 어떤 이들은 ‘삶에서 무엇을 가치에 두는가가 이를 결정하니까 이해할 수 있는 것 아닌가?’란 생각을 건네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똑같은 급여, 똑같은 보상을 가져가는 것이 정당할까? 차등적으로 배분하는 방법도 있을 텐데 말이다. 물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른 의견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차등적 대우가 정의다! 

 

또 다른 집단은 다른 사람은 다르게 대우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다. 그들은 의무를 행한 자에게는 권리를, 노력한 자에게는 보상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이들은 무조건적인 평등을 반대한다. 

 

사실 타인을 평가하는 건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대신에!

 

정의에 대한 생각을 나누면서 전하고 싶은 건 ‘이래야 한다!’가 아니다. 단지, ‘이런 생각이 있으니 한 번 생각해보는 건 어떤가요?’라는 메시지를 건네고 싶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가 스스로 ‘정의롭다’고 말하면서 타인을 평가하고 있는 모습을 다시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나 또한 직장생활을 하면서 타인을 평가하는 모습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이는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게 정당함을 의미하진 않기에 우린 이러한 생각들을 끊어낼 줄 알아야 한다. 대신에,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한 번쯤은 소통을 해볼 시도를 한다면 좀 더 원만한 관계를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개인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에 대해서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행위는 무의미하지는 않겠지만, 매우 소모적인 일이다. 소통의 시작은 내가 타인의 세계관을 논박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할 때, 다시 말해서 타인이 나와는 정말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음을 인정할 때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 - 채사장, <시민의 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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