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 버튼을 4초 이상 누르세요. 별안간 시선에 들어온 문구였다. 이 노트북과 인연이 닿은 지도 햇수로 3년 차에 접어들었다. 그램의 실질적인 수명은 길어 봐야 2년이라는 속설이 있던데. 그 말에 따르자면 내 그램은 최장수 그룹에 속할 거였다. 그 탓인가. 자판의 군데군데가 헐어있다. 어떤 건 신경 써서 힘을 줘야만 제 기능을 발휘한다. 얼마 전에 대리점까지 가서 수리받은 건데. 억지로라도 나름 쓸만하다 여겨본다. 냉장고에 넣어둔 음식처럼 조금만 더, 부디 이번 주까지만이라도.
오늘은 유독 스스로가 고장 났다고 여겨지는 하루였다. 일을 하면서도, 밥을 목구멍으로 넘기면서도, 누군가에게 답장을 보내면서도. 내가 이토록 초라하다니. 머릿속에 명확히 떠오르는 이유 같은 건 없었다. 그냥 가끔 찾아오는 무력감, 뭐 그런 거였다. 이런 날엔 아침부터 기분이 요상하다. 간단한 문장조차 발음되지 않는다. 설마 여전히 그럴까, 했는데 역시나. 출근하려고 문을 열면서 형한테 인사하려는데, 입술이 안 떨어졌다. 조용히 차에 탔다. 첫 손님을 맞이할 때도 그랬다. 어 어서 오세요. 포 포장해 드릴까요. 나는 가진 것도 없고, 능력도 부족해, 이런 식의 문장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이러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맘껏 울고 싶어지겠지, 라고 독백했다.
나한테도 전원 버튼이 있었으면 좋겠다, 고 생각한다. 아무 의식 없이 쉬었다가 다시 침착한 에너지를 가득 채웠으면. 마음이 행동보다 급해서 말을 더듬는 거라던 상담 선생님의 말을 반복해 본다. 다소간 차분해진다. 분명 효과가 있다. 문득 나랑 얼마간 지내본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떠오른다. 교준 씨는 사람이 참 긍정적이에요. 이어서, 그런 건 제가 단점을 숨기려고 노력하기 때문이에요, 라는 말을 애써 삼켰던 것도.
내가 지금 이러는 건 과거 때문일까, 기억 때문일까. 학창 시절엔 이런 말투 때문에 외로웠다. 친구라고 믿었던 애가 내 말을 따라 하거나, 좀 제대로 말해 하거나, 장애인이냐 할 때마다 나 같은 놈 왜 살지 싶었다. 언어 발달 장애라고 하던데. 내가 가진 병명. 이 병은 흡연자들에게 통용되는 금연의 의미와 같은 성질을 지니기도 했다. (그러니 아직 나는 누군가와 대화할 때마다 마음을 가다듬어야 하는 거겠지)
여기서라도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고 다짐한다. 더 들어가면 오늘 잠은 없을 테니까. 일단 나가자. 걷다 보면 나도 쓸모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심호흡해요, 심호흡.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