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by 금교준

손가락에서 피가 났다. 설거지를 하던 중에 베인 거였다. 뭐였지. 왠지 오늘따라 고무장갑이 끼고 싶더라니. 복선이었나. 그런 날이 있다. 평소에 하지 않던 것이 굳이 하고 싶은 날. 그 찰나의 동요를 애써 무시하면 작게라도 사달이 났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미약한 직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에 대한 대가일 거였다.


오른손 중지에 살짝 벌어진 틈이 보인다. 이 작은 균열이 어떤 결과를 몰고 올까, 하고 고심했다. 평소에 존재감이 없던 것도 사라지면 극심한 공허감을 남긴다. 어느새 잉크가 굳어버려 움푹 흔적만 남기는 볼펜. 푸시 버튼을 눌러도 뿌려지지 않는 향수. 상처가 났을 때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연고까지. 미미했던 것들은 존재와 공허의 상관관계를 무색하게 만들곤 했다.


연고와 밴드를 샀다. 피가 지혈된 곳에 약을 발랐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따끔했다. 만만하게 볼 것이 아니네. 상처 위에 밴드를 붙이고는 노트북을 열었다. 아무리 생채기가 났다지만 할 건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오늘은 어떤 글을 쓸까, 하는데 오른손가락 끝이 아렸다. 아무래도 당분간 ‘ㅏ’나 ‘ㅑ’ 그리고 ‘,’를 누를 때마다 촉감이 유독 찌릿할 터였다.


이런 상황. 이별을 닮았네, 라고 독백했다. 끝내 권태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헤어졌던 연인이 생각난 거였다. 그녀는 제법 큰 키에 마른 체형이었다. 머리는 가슴께까지 내려왔고, 중간부터 웨이브가 들어간 모양이다. 옆에 앉아있으면 벚꽃 향이 났던 것도 같다. 그녀도 나도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던 날. “우리 그만하자. 왜 만나는지 모르겠어.” 마지막으로 나눈 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가 보고 싶고, 어디를 가든 그녀의 흔적이 보였다. 눈을 감으면 그녀의 뒷모습이 아른거렸다. 잠들었을 땐 그녀의 이름을 잠꼬대처럼 읊조리기도 했다. 익숙함이 초래한 결말, 뭐 그 정도로 명명할 수 있겠다.


손가락 끝이 바늘 같은 것에 찔리는 느낌이 들었다. 밴드에는 온통 빨간색이 칠해져 있었고, 그녀가 좋아하던 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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