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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교준 Jun 13. 2020

혼자가 익숙해졌다는 것의 의미

혼자 카페 가기, 혼자 영화보기, 혼자 책 읽기가 좋아졌다.

“화장실 같이 안 갈래?”


 나는 원래 외로움을 잘 느끼는 타입의 사람이었다. 내게 혼자 있는 시간은 견디기 힘든 인고의 시간이었고, 꼭 누군가에게 전화라도 걸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너질 듯 허전했으니까. 그 때문인지 나는 되도록 많은 친구들과 친해지려고 무진장 애썼던 기억이 난다. 결과는 꽤 만족스러웠지만 :)

 그런 내가 대학교 때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있다. “화장실 같이 안 갈래?” 쉬는 시간이던, 술자리든 간에 조금이라도 친한 친구가 있으면 어김없이 이 권유를 들어야만 했다.(지금 생각해보니 너무나 엉뚱한 권유다.) 화장실 가는 것조차 외로울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었을까? 다행스럽게도 내 주변엔 나를 좋아해 주는 친구들이 많아서 같이 가주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때 내 별명은 ‘엑스칼리버’였는데, 같이 다니면 한없이 재밌게 해 준 유머 덕분이었다.) 

시작은 작은 이별에서부터

 

 그런 내가 바뀌기 시작한 건 대학교 3학년부터였다. 온갖 이별들을 경험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3학년 말이 되면서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죄다 국방의 의무를 지러 떠났으니까. 군 장교로 복무하고 싶던 내가 혼자가 된 건 전혀 이상한 게 아니었다. 그나마도 쓰러질 만큼 외롭지 않았던 건, 밀도 높게 좋아했던 사람이 있어서다. 그리고 그녀는 내가 4학년이 됐을 때, 순리를 따르듯 자연스럽게 떠나갔다. (그래도 친한 여사친들이 있었기에 근근이 버텨낼 수 있었다.)

 결국 우정에서도 혼자가 되고, 사랑에서도 혼자가 되고 나니까 비로소 정말 혼자라는 게 느껴졌었다. 화장실도 혼자 못 가던 사람이 혼자 강의를 듣고 도서관을 다니는 빈도가 늘어나니까 죽을 맛이었다. 근데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맞는 게, 그마저도 조금씩 익숙해졌다. 

 익숙함을 가속시키려는 노력이었을까 이때부터 감정이 담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짧은 '시'들을 적었는데, 혼자 다니는 시간이 늘면서 영감만 얻었다 치면 글 쓰는 것 이외에 모든 행동을 멈췄다. 수업시간, 길을 걸을 때 구분 없이! 당시에는 수업에 늦기라도 하면 ‘영감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라는 핑계를 둘러댔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는 차를 타고 가다가 하천에 쌓인 물안개를 보고는 갓길에 차를 세워둔 채 글을 쓰기도 했다.(차가 잘 안 다니는 시골길이었다.) 

 군에 입대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글 쓰는 걸 잊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말로만 듣던 악독한 상사들에게 시달리기 전까지 그랬다. 새로운 일들을 배우기에 급급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정말 ‘털린다’라는 경험을 하고 나니까 ‘이런 사람이 진짜 있구나’, ‘현실이라는 건 이상과 정말 다른 거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혼자 분을 삭이는 시간이 늘어났다. 엉뚱하게도 처음에는 혼나면서도 ‘와 내가 말로만 듣던 상황을 겪고 있구나’라는 생각도 했다. 어쨌든, 그들에게 시달리면서 시작한 게 잠시 동안 잊고 있던 글쓰기다. 퇴근 후 차 안에서, 잠들기 전 침대 위에서, 텅 빈 사무실에서 등등 온갖 힘든 감정들이 쌓이면 글을 적어댔다. 어떻게 보면 글이 내 감정의 쓰레기통 역할을 해줬다. 그렇게 시작한 게 ‘혼자 글쓰기’, ‘혼자 카페 가기’다. 숙소에 있으면 가슴이 답답했고, 카페라도 나가면 창의적인 생각이 다 드는 것만 같았다.


혼자가 익숙해졌다는 건


 이제는 혼자 카페에 가는 것마저도 익숙해졌다. 오늘만 해도 혼자 와서는 5시간이 넘도록 앉아 있다. 출판사에 약속한 원고를 편집하고, 관심 생긴 책을 읽기도 하고, 이제는 이렇게 내 이야기를 적어댄다. 이 모든 일들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커피를 연달아 두 잔을 시킨 내 모습이 직원분들에겐 어떻게 보이는 지에 대해서도 눈치 보지 않기 시작한 지 오래다.(감사하게도 한 잔의 커피와 빵을 서비스로 주셔서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 )

 다른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닌, 혼자 생각하면서 보내는 시간들이 이젠 좋다. 혼자가 익숙해졌다는 건 그만큼 주변을 느낄 줄 알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유 없이 꽤 오랜 시간 동안 파도를 응시하기도 하고, 괜스레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쳐다보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내 모습을 투영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연인들을 보면, 만약 연인과 데이트를 하고 있다면 어떤 말을 건넸을까? 생각을 해본다. 아이와 함께 온 부부를 볼 때면, 나중에 나도 가정을 꾸리곤 저런 데이트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내 아이는 어떨까, 내 아내는 어떤 사람일까 괜스레 상상해보기도 한다. 어쩌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온 대가족을 볼 때면, 할아버지가 된 내 모습을 생각해본다. 나는 가정을 꾸린 채 손자들을 보며 기뻐하고 있을까? 아니면 홀로 자연 속에 앉아 세상의 미래를 점쳐보고 있을까? 

  방금 카페 앞에서 놀고 있던 한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흐뭇하게 바라보던 모습을 들켜서 흠칫했는데, 손 흔들어주니 밝게 웃으며 화답해줬다. 이런.. 혼자가 익숙해진다는 건, 이런 흐뭇한 장면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행복을 주기도 한다. 잿빛으로 덮어써진 현실에서 한껏 순수한 웃음을 볼 수 있다는 건, 현실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행운을 선물 받은 것과 같다. 오늘도 혼자 나오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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