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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교준 May 15. 2022

단상 10

1.

게임 스토리를 파악하는 일에 대해서 소견을 갖게 되었다. 그 심정이란 단순히 재미를 넘어 경이를 느낄 정도다. 그리고 지금부터 할 말은 게임을 취미로 갖는 것에 대해 합리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다. 한 세계관에 소속된 능동의 존재로서 일생을 살아보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때에 따라서는 경탄을 내비치려는 것이다.     


2.

플레이스테이션을 기반으로 하는 게임 중에 레드 데드 리뎀션이라는 게임이 있다. 서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회 그룹(갱단)에 소속되어 그룹을 위해 혹은 개인을 위해 살아가는 내용이다. 플레이어는 캐릭터를 넘어 하나의 자아가 되어 개별적인 선택을 내릴 수 있다. 결정의 순간에는 보통 세 가지에서 네 가지의 선택권이 부여되는데 선택지마다 그룹에 이익이 될 수도, 개인에게 이익이 될 수도 있는 여지가 숨어있다. 물론, 반대로 위협이 되기도 한다. 잘못 선택했다가 나를 포함하여 그룹 전체가 몰살당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말단에 가면 한 존재의 배신으로 인해 그룹이 해체되는 위기에 처한다. 이때 플레이어는 실질적으로 그룹을 위해서 플레이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심을 받는다. 영향력을 가진 그룹원들끼리 둘러서서 서로를 헐뜯고 의심하고 매도하는 장면은 하나의 자아로서 행동해온 스스로에 대해 몇 가지 의문점을 들게 만들었다. 내가 정말 그룹을 위한 선택을 해왔는가. 이렇게까지 갈등이 불거진 상황에 과연 나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가. 그렇게 놓고 보면 결백하다고 말할 수 있는 캐릭터는 없었다. 캐릭터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미약하나마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 마침내 실질적인 악행을 저지른 캐릭터는 살아나고 선행 혹은 공정함을 추구한 캐릭터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 평화가 찾아오고 선행자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가 단 한 명뿐일 때, 직면했던 모종의 감정 때문에 나는 인생에 대해서 다시금 곱씹게 되었다.     


3.

 오브 워라는 게임도 나의 여러 부분을 자극했다. 그리스와 북유럽 신화를 무대로 반인반신인 주인공이 복수 혹은 모종의 목적을 이유로 신과 싸우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가장 최근에 출시된 시리즈에서 주인공은 아들과 여행을 하는데 자신의 죽음과 주검이  그를 안아 들고 절규하는 아들의 모습을 예언의 형태로 목도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운명에 순응하는 듯한 태도로 여행을 이어간다.      


진행 도중에 주인공이 아들에게 하는 말도 곱씹어볼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는 더 나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 아니. 우리는 이전에 존재했던 신이 아닌 우리가 선택한 대로의 신이 될 것이다. 네가 꼭 과거의 나처럼 될 필요는 없다. 우린 분명 더 나아질 것이다. 그리함으로써 네가 살 수만 있다면, 그렇단다.”


4.

게임산업이 발전할수록 게임 속에 사유할 거리가 녹아들고, 몰입하면 할수록 그들이 꿈틀대는 것을 실감한다. 도서뿐만 아니라 영화와 음악, 심지어 게임에도 우리는 생각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녹아들기 시작했다, 고 나는 여기고 있다. 더 이상 게임이란 것은 재미나 흥미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닌 존재의 삶의 관점을 경험해볼 수 있는 매체가 된 것이다. 지금껏 불신하고 격하했던 것들을 다시금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나는 게임 속에서 발견하고 있다.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으로 적은 글입니다. 게임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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