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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교준 May 31. 2022

단상 18

1.

방에 달린 쪽창은 노을이 한창일 때만 볕을 받는다. 서향의 창문. 나는 뜨는 것보다 지는 걸 좋아하는 창 때문에 저녁이면 창을 열고 붉은 볕을, 책장에 부딪혀 죽 늘어진 모양으로 비치는 그 볕을 종종 훔쳐보았다. 그것은 어떤 희망, 애석하게도 일하느라 느슨해진 눈꺼풀을 들어 올릴 수는 없을 정도의 미약한 희망을 내포했다. 하여간 자꾸만 눈이 갔다.     


2.

언제부터인지 들추지 않았던 시집*을 고쳐 들었다. 시인 박준이 ‘나는 매일 병을 얻었지만 이마가 더럽혀질 만큼 깊지는 않았다. 신열도 오래되면 적막이 되었다.’ 라고 적은 곳과 ‘눈을 감고 앓다 보면 오래전 살다 온 추운 집이 이불속에 함께 들어와 떨고 있는 듯했습니다.’ 라고 적은 곳에 밑줄을 그었다. 일전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던, 그 애가 좋아한다는 사실만 암기해두었던 문장들.      


3. 

그 애는 내가 아픈 날이면 수건에 물을 묻혀 이마에 얹어주거나 쌀을 불려 계란죽을 끓여주었다. 나는 끼니를 건너뛰려 해도 그러질 못했다. 그 애가 나름 단호한 목소리로 당부하며 입술 사이로 흘려보냈기 때문에. 숟가락을 움켜쥔 작은 손을 보면 입이 양옆으로 벌어졌기 때문에. 그 애가 끓여준 죽을 먹고, 같은 이불을 덮고, 숟가락 대신 내 손을 움켜쥔 그 애의 손길을 붙잡고, 때가 되면 물에 적신 수건을 바꿔주는 모습을 보고, 얼른 나아서 산책하자 해놓고는 먼저 잠든 그 애의 숨소리를 듣고. 몇 해 전 살았던 그 집을 나는 선연하게 그릴 수 있다.     


4.

시인 허수경은 박준의 「꾀병」을 읽고 미인을 창문이라고 했다. 미인은 공간의 안과 밖을 드나들고, 소년은 미인이 외출하는 동안 어둠 속에서 신열을 앓는다. ‘피곤에 반쯤 묻힌 미인의 얼굴에는, 언제나 햇빛이 먼저 와 들고 나는 그 볕을 만지는 게 그렇게 좋았다.’ 시 말미에서 미인은 소년과 볕을 이어주는 존재, 창이 되었다고.      


5.

노을 무렵 창을 열었다. 볕은 책장에 죽 늘어졌고, 방을 조금 환하게 했다. 눈을 감았다. 눈꺼풀까지 따라붙은 볕을 보았다. 눈에 들어오지 않던 시가 예정되지 않은 미지한 순간 눈길의 면면을 점거한 것에 경탄하며 나는 그 애를 회상했다.     


*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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