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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교준 May 30. 2022

단상 17

1.

나는 요즘 행복을 찾기가 어렵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일상에서 포착되는 것들은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삶으로 재해석되고는 했다. 별안간에 설명할 수 없는 패배감이 들거나 오늘은 문장을 짓는 대신에 내 이름을 영 지워버릴 수는 없을까, 싶기도 했다. 이거 나를 찾으려다 내팽개쳐지는 꼴이다. 좀 처절하다. 사실 그때 당신에게 내던졌던 얘기들은 사실이 아니야. 나는 그저 도망치려 몸서리친 것이었다. 당신이 있는 세상이 너무 행복해서, 못내 버거워서, 그토록 기쁜 세상을 생에 처음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강하게 부정한 것이었다. 라고 비겁한 문장을 기어코 지어낸 적도 있었다.     


2.

심리상담사는 타인의 내면은 곧잘 들여다보지만 자신의 것은 직면하지 못한다고 한다. 남의 눈은 보아도 자신의 눈은 바로 보지 못하는 것처럼 내면을 꿰뚫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슈퍼 비전을 필요로 한다. 상담가를 상담해주는 사람. 어쩌면 스승. 그와 얼마간의 시간을 함께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울증에 걸리기도 한다는 상담가의 이야기를 적잖게 들었다.      


3.

어떻게든 행복해 보일만한 구석을 찾아 뽐내는 것이 일종의 취미가 되었다. 내게는 그것이 슈퍼 비전인 셈이다. 그렇게 당당해놓고 무너지면 당신이 허무하잖아. 그렇게라도 당신이 유의미한 삶을 살기를 바랐다. 내게 복수하기 위해 살아. 나보다 자주 웃으면서. 그 사람이랑 잘.      


4.

서로 질 세라 눌러대던 미니 농구 게임기. 가운데 그어진 선 옆에 당신과 내 이름을 적고 점수를 셈해보던 거. 손가락을 주무르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틀림없이 우리라고 우겼던 거. 그 시절을 회상하면서 문득 울었다.      


방 한구석에는 아직도 그 게임기가 놓여 있다. 나는 그걸 쓰지도 않으면서 끝내 버리지 못했다. 사는 게 좀 퍽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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