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건축에서 문(門)은 ‘공간의 경계 또는 출입하는 지점에 설치된 구조물’이다. 담이나 벽 같이 경계를 짓는 구조물과 함께 있을 때라야 비로소 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오고 가는 것, 여닫는 것 혹은 밀고 당기는 것. 일련의 행위가 뒤따를 때 문으로써의 특성이 비로소 살아남는다. 방이 방의 역할을 다하려면 문과 창이 있어야 한다는 노자의 말처럼 문이 문의 역할을 다하려면 벽이 필요하다.
2.
우리는 관념 속에 산다. 일희일비하거나 고요하거나 하여간 생을 묘사할 때 결코 배제할 수 없는 감정들은 관념으로부터 시작된다. 기쁨과 사랑, 만족과 성취, 분노와 다툼, 아픔과 이별 전부 관념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문 또한 하루에도 수십 번 마주하는 관념 중 하나이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그것은 분명 모종의 감정을 동반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문을 넘어섰을 때 왜 당신이 떠올랐는지, 왜 대뜸 문의 정의를 줄줄이 나열했는지, 그 당위성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3.
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타국 억압의 시절 한 작가의 시에는 한민족의 마음을 붙잡아 울리는 통탄이 담겼다.
그의 집 사립문을
밤마다 두드리며
크고 높은 소리로
나 괴롭노라고
그리운 설운 일을
애껏 한껏 고할까*
4.
누군가 사랑의 동의어에 관해 물었을 때 나는 생채기라고 답했다. 진부했다. 누군가 가슴 한편을 깊숙이 찔러 끝내 마음을 퍼 올린 낱말을 왜 나는 진부한 낱말로밖에 치환하지 못했는지를 생각하면 좀 고달파진다. 나와 당신 사이에는 벽조차 쌓일 수 없어 내가 두드리는 소리는 당신에게까지 가닿을 수 없다. 광야 위에 덩그러니 놓인 문을 대면하자면 나는 퍼 올릴 만한 유의미한 낱말을 찾을 수 없다. 어느샌가 얼굴과 손길 그리고 목소리를 온전히 기억해낼 수 없게 되었다. 당신에게 생채기를 내고야 말았다는 사실과 그것을 내가 치유해줄 수 없다는 현실이 머릿속을 배회하는 시점에 도달한 것이었다.
5.
당신의 이름 뒤에 연가라는 낱말을 붙일 수 있을까, 나는 생각했다. 답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문틀 위로 책임감 없이 흩뿌려진 지난한 문장들을 긁어모을 것만은 자명했다.
* <연가>, 김명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