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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교준 May 29. 2022

단상 16

1.

건축에서 () ‘공간의 경계 또는 출입하는 지점에 설치된 구조물이다. 담이나  같이 경계를 짓는 구조물과 함께 있을 때라야 비로소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오고 가는 , 여닫는  혹은 밀고 당기는 . 일련의 행위가 뒤따를  문으로써의 특성이 비로소 살아남는다. 방이 방의 역할을 다하려면 문과 창이 있어야 한다는 노자의 말처럼 문이 문의 역할을 다하려면 벽이 필요하다.      


2.

우리는 관념 속에 산다. 일희일비하거나 고요하거나 하여간 생을 묘사할 때 결코 배제할 수 없는 감정들은 관념으로부터 시작된다. 기쁨과 사랑, 만족과 성취, 분노와 다툼, 아픔과 이별 전부 관념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문 또한 하루에도 수십 번 마주하는 관념 중 하나이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그것은 분명 모종의 감정을 동반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문을 넘어섰을 때 왜 당신이 떠올랐는지, 왜 대뜸 문의 정의를 줄줄이 나열했는지, 그 당위성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3.

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타국 억압의 시절 한 작가의 시에는 한민족의 마음을 붙잡아 울리는 통탄이 담겼다.      


그의 집 사립문을

밤마다 두드리며

크고 높은 소리로

나 괴롭노라고

그리운 설운 일을

애껏 한껏 고할까*     


4.

누군가 사랑의 동의어에 관해 물었을  나는 생채기라고 답했다. 진부했다. 누군가 가슴 한편을 깊숙이 찔러 끝내 마음을  올린 낱말을  나는 진부한 낱말로밖에 치환하지 못했는지를 생각하면  고달파진다. 나와 당신 사이에는 벽조차 쌓일  없어 내가 두드리는 소리는 당신에게까지 가닿을  없다. 광야 위에 덩그러니 놓인 문을 대면하자면 나는  올릴 만한 유의미한 낱말을 찾을  없다. 어느샌가 얼굴과 손길 그리고 목소리를 온전히 기억해낼  없게 되었다. 당신에게 생채기를 내고야 말았다는 사실과 그것을 내가 치유해줄  없다는 현실이 머릿속을 배회하는 시점에 도달한 것이었다.      


5.

당신의 이름 뒤에 연가라는 낱말을 붙일 수 있을까, 나는 생각했다. 답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문틀 위로 책임감 없이 흩뿌려진 지난한 문장들을 긁어모을 것만은 자명했다.


* <연가>, 김명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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