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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교준 Jun 10. 2022

선농탕

여름 들어 주식으로 먹게 된 음식이 있는데 우족을 열일곱 시간 우렸다는 설렁탕이었다. 농경 마을 이웃이 소분하여 나눠준 설렁탕은 기운이 없는 날 유용하게 쓰였다. 푹 끓여 밥과 말아도 좋았고, 찌개 육수로도 그만한 게 없었다. 심지어는 그 뽀얀 국물에 라면을 끓이면 없던 기운이 솟을 정도로 진국이 되고는 했다.     


설렁탕의 유래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상들은 농사의 신인 염제 신농씨*에게 풍작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렸는데 그 제사가 이뤄졌던 곳이 ‘선농단’이었다. 들리는 바로는 왕이 향과 축문을 전하거나, 직접 참여할 만큼 중요한 제였다고 한다. 제가 끝난 뒤에는 조정 대신들과 백성들이 제물로 희생된 소로 우려낸 국을 나눠 먹었고, 그것이 선농단에서 내린 것이라 하여 ‘선농탕’이라고 불리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선농탕은 설롱탕으로, 설롱탕은 다시 설렁탕이 되었다.      


선농탕이 설렁탕이 된 데에는 부르기 편하다는 점이 한몫했다. 나는 느닷없게도 영에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서 미운 사람이, 마침내 그리운 사람이 되지는 않았을까, 하고 자문해보게 되었다. 아무래도 다른 거보다는 그리운 게 부르기는 쉬울 테니까. 그러나 곧 미운 사람에서 정체되었을 거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끝내 그녀에게 진국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래도’, ‘어쩌면’, ‘무심결에라도’ 같은 말들을 앞에 놓아보기도 했는데 완결되는 문장은 없었다.      


너는 사랑과 연관 없는 것들이 기어코 사랑으로 이어지는 플롯을 선호한다고 말했지. 가끔은 날씨가 좋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래서 좋아해, 해달라던 투정도 기억하고 있다. 그 바람이 먹힌 것인지, 지금의 나는 무엇을 마주하든 너부터 떠올리는 사람이 되었다. 설렁탕을 먹어서 그런지 네가 생각났다는 사람이, 여름이 되어서 너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그러나 이 말이 네게 전해질 일은 없겠지. 나는 그 사실을 깨닫고는 과거에 처절해졌고, 왜인지 이번만큼은 설렁탕도 별 소용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염제 신농씨 : 배달국시대의 성인이자 동방 한민족의 조상. 백 가지 약초를 직접 맛보아 백성들을 구제하였고, 농경 결혼제도, 시장제도를 만들었다. 의학과 농경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의 신으로만 알려져 있는데 삼국 시절의 조상들이 직접 제를 올린 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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