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믿는 것
아내가 지금까지 하던 내과병원 일이 아닌 김밥집에서 일을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났다. 처음엔 적응이 안 되는지 무척 힘들어하였다. 특별한 운동을 하지 않아도 점점 살이 빠지는 아내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낀다. 가끔 사장이 싸 가랬다며 김밥이며 쫄면을 포장해오는 아내... 나는 그 김밥을 먹으며 약간의 슬픔을 익히고 있다. 이런 슬픔은 나를 반성하게 하고 지나온 계절을 돌이키게 만든다.
아무리 힘들어도 자식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해주고 갖고 싶은 것을 갖게 해 주려는 아내는 가난한 집안의 6남매 중 셋째 딸이었다. 없는 살림에 6남매가 살아오는 과정은 익히 들었지만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아무튼, 아내가 점점 강해지고 있음을 보고 느낀다. 어쩌면 그렇게 만든 건 이 모진 세상이 아니라 남편이자 원수인 "나"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취지에서 예수님이 그리 말씀하셨는지는 몰라도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셨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낭떠러지에 서 있는 것처럼 궁색해져서 집 안에 있는 책이라도 팔아 용돈을 쓸 때가 있었다. 얼굴 가리고 마음도 가리면서 생활자금을 빌리기 위해 사람들에게 이상한 사람으로 인식되던 때가 있었다. 절박하다는 건 그런 것이다.
사람들은 주변을 의식한다. 필요한 일이지만 그 당시의 나는 그런 게 안 보였던 것 같다. 아무리 힘들고 버거워도 살아지는 삶의 중심은 무엇에 있을까. 자세하게 알 수 없지만, 그 시작의 첫걸음은 인간의 정신에 기초하고 있다고 본다. 나는 나의 정신을, 아내의 정신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