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을 따라
by 라윤영
꽃밭을 따라 걸어가는 산책로는 썩 괜찮은 도보 길이다. 아파트는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비교적 깨끗하다. 저녁이 되면 가끔 곳곳을 걸어보기도 한다. 마음 한구석에 응고된 덩어리가 담겨있는 듯 이곳에 와서 지내는 동안 무거운 마음을 느낀다. 모든 상황을 고려할 때 지금 여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최선임을 알면서도. 눈앞에 아른거리는 얼굴들이 있다. 한쪽을 채우면 다른 한쪽에 여백이 생긴다. 머리를 식힐 겸 차를 끌고 나왔다. 어떤 목적지도 없이 차가 가는 대로 간다. 삶의 길이 이러했을까. 방향과 목적을 지운 채 떠도는 먼지처럼 말이다.
내게도 그 무엇도 아니었던 뜨거운 날이 있었다. 흙먼지 날리는 여름 어느 날에 군대를 지원하여 갔다. 그 기억은 아주 오랫동안 내게 어떤 강박과 불안을 안겨주기도 한다. 지원하였지만 내심 원치 않는 장소와 시간 속에 조용히 나를 놓일 슈밖에 없었다. 당시는 그런 시간이 길고 지루하게 느껴졌다 할지라도 돌이켜보면 8년이란 시간은 내 젊음을 벌레처럼 파먹으며 금세 지나갔다. 아무리 힘겨운 시간도 결국 지나간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기간이었다. 살아가는 동안 인간은 수없이 많은 고난을 겪는다. 행복한 시간이 오기를 바라면서 순간순간을 살아가는 것이다. 어쩌면 그런 바람은 인생을 지속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오지 않는 그 무엇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것처럼... 집에 돌아온 아이가 장에 나간 엄마를 손꼽아 기다리는 마음처럼 ,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막연할지라도 어떤 기다림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인생이 조금 쓸쓸해질지라도 기다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기쁨과 행복을 기다리며 결핍된 여백을 찾아 사랑하며 살겠다고 다짐한다. 비록 인간의 일생은 결국 아무것도 아닌 채로 마무리 짓게 될 공산이 크지만 그렇다고 해서 삶이 무의미하다고 단정 짓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