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리에

by 라윤영

그 자리에


/라윤영




오래된 고목이 잘려나간 그 자리에

희미한 나이테 남겨져 있다

갈라지고 부서진 뿌리를 따라

검게 피어난 버섯은

삼아 남지 못한 독기를 품고 있다

뿌리 위 엷게 자란 풀잎은 누구의 이름인가

햇볕에 마음을 지운 채

태어난 자리 그대로

죽어있는 나무의 이름을 알 길 없다

빗방울은 죽어서 강물이 되고 바다가 되어

알 길 없는 물방울로 세상을 떠돌다가

마침내 하늘로 올랴가 구름이 되어

다시 세상에 내려온다

비가 천천히 구름을 뚫고 내려와

차가운 얼굴 감싸고 있다

잘린 나무를 촉촉이 적시고 있다

풀잎이 곁에서

금이 간 뿌리를 따뜻하게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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