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생 경찰관이 마주한 사람 사는 세상
친구가 남자 친구, 남편 험담을 한다. 오늘은 이래서 마음에 안 들었고 어제는 저래서 마음에 안 들었다고 한다. 이럴 때 우리는 같이 험담을 해준다. 그런데 친구의 반응이 영 시원치 않다.
“야, 너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또 알고 보면 그렇지도 않아.”
“...”
할 말이 없다.
이럴 때 친구의 심리는 과연 무엇일까. 실컷 내 앞에서 남자 친구, 남편의 험담을 해놓고는 같이 맞장구를 쳐주었더니 오히려 적반하장이다. 같이 공감을 해주었으면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 고마운 건 그렇다 치자. 왜 나한테 화를 내지...?
이런 경우 친구는 그저 들어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판단은 내가 할 테니 너는 듣기만 해. 해결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니까? 아무리 험담을 해도 내 남자 친구이고 내 남편인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잠자코 들어줄 수밖에 없다.
내가 아무리 친구에게 조언을 해주어도 해결해 줄 수 없는 것들이다. 친구는 그저 우리가 들어주기를 원할 뿐.
업무를 하다 보면 생각보다 해결해 줄 수 없는 신고들도 많이 들어온다. 이런 경우는 참 난감하다. 근데 의외로 가슴속 답답함이 많아 들어주길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느 날 민원인 한 분이 찾아오셨다. 이야기를 듣자 하니 당장 신고 접수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자세히 들어보니 10년도 더 지난 이야기였고 처벌을 원하는 상태는 아니라고 한다. 업무 특성상 민원인이 방문했다면 이야기를 들어보고 해결을 해주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는 것이 익숙했기에 머릿속에는 계속 한 질문만 맴돌았다.
'그래서, 저희가 뭘 도와드리면 되죠? ‘
하지만 민원인의 이야기는 멈출 줄을 모른다. 내가 질문할 틈을 주질 않는다. 그렇게 속 시원하게 다 쏟아내신다. 계속 듣다 보면 판단이 된다.
’아.. 해결을 원하는 것이 아니구나. 그저 들어드리면 되는구나. “
민원인의 속이 풀릴 때까지 들어주다 보면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과거의 이야기부터 30년간의 이야기를 쏟아내시고 나면 속이 시원해지셨는지 감사하다며 고맙다며 인사를 하고 집에 귀가하신다.
때로는 민원인들이 경찰관에게 크나큰 해결책을 바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느 곳에 마음 주고 말할 곳이 없다 보니 경찰을 찾아오셨을 뿐.
이번에도 비슷한 민원인이다. 자신도 이 문제를 경찰이 해결해 줄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단다. 너무 답답해서 그러니 들어달라고 한다. 그래, 이번에도 경청한다. 이번 민원인 역시도 들어주셔서 고맙다며 답답해서 그랬다며 인사를 남기고 떠난다.
하지만 이번엔 문제가 생겼다. 민원인이 가정문제를 파출소까지 와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민사적인 부분이었기에 방향성은 제시해줄 수 있었지만 괜히 말 한번 잘못했다가는 역으로 민원을 맞을 수 있기에 난감한 상황이다.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알아요.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거, 일단 들어나 주세요. “
우리도 가슴이 답답할 때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쏟아내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이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속이 시원해질 때가 있다. 그러니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을 때는 그저 들어주면 된다. 하지만 공감을 해준답시고 같이 욕해서는 안된다. 뾰족한 해결책이 없을 때에는 말하는 자는 상대방에게 큰 걸 원하지 않는다. 같이 욕해주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경청할 때 주의해야 할 자세이다.
두 번째 상황이라면 더 난감하다. 이럴 때에는 들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집안문제를 눈앞에 보이는 곳까지 끌고 오지 않도록, 눈앞에 끌고 왔다면 집에 잘 귀가할 수 있도록 민원인을 설득해야 한다.
그러니 이러한 상황에 닥쳤을 때에는 그저 귀를 열어주어야 한다. 입은 필요할 때에만 열면 되지 않을까.
사람의 감정을 다루는 것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