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묘약인가 마약인가

90년대생 경찰관이 마주한 사람 사는 세상

by 민이음



술은 묘약인가 마약인가




주취자에게도 레벨이 있다



지구다, 파출소에서 일하다 보면 가장 자주 접할 수 있는 것이 주취자 사건이다. 특히 야간 때에는 다양한 주취자를 만나볼 수 있다. 택시에 탑승 후 요금을 지불하지 않아 파출소까지 끌려오는 주취자, 계속 같은 말만 반복하는 주취자, 술 마시고 옆사람에게 시비 걸다가 신고당하는 주취자, 술 먹고 운전대 잡았다가 신고당한 주취자 등등.. 홍대나 이태원처럼 유흥시설이 즐비한 것도 아닌데, 불금의 날도 아닌데 야간이면 꼭 한 번씩은 보게 되는 주취자들.



주취자의 레벨은 1부터 10까지 있다.



레벨 1의 주취자가 있다. 술에 취한 것도 취한 것이지만 잠에도 만취했다.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처음에 이 상황을 마주했을 때 정말 기절한 것이 아닌지 걱정되었을 정도로 잠에 취해있었다. 포기하지 않고 깨운 끝에 주취자가 일어났다. 다행히도 기절한 것은 아니었다. 잠에 깨어 갑자기 배시시 웃는다. 나를 경찰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착각한 것이 아닌가. 상황이 길어지겠구나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그 레벨 1의 주취자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부끄러워 그렇게 웃었던 것이다. 죄송하다며 택시요금을 지불한다. 연신 죄송하단 말을 반복한다. 깨어 주셔서 오히려 내가 더 감사하다. 아무리 술에서 깨었어도 집에 들어가는 것은 봐야겠으니 근처까지 데려다 드린다. 그럼에도 연신 죄송하다, 괜찮다를 외친다. 그렇게 레벨 1의 주취자는 안전하게 귀가했다. 이렇게 술뿐만 아니라 잠에도 만취한 주취자는 정말 몸조심해야 한다. 여성, 남성 불문하고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겨울에는 특히나 더 조심해야 한다.



이번엔 인사불성의 주취자가 있다. 레벨 2이다. 본인의 몸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 그렇다고 잠에 든 것도 아니라 더 난감하다. 특별히 사건사고를 일으킨 게 아니라면 주취자의 안전을 위해 집까지 데려다주어야 하는데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그것마저도 쉽지 않다. 여러 가지 방법을 취한 후 주취자의 주거지를 알게 되어 순찰차로 데려다주는 도중 일이 터진다. 순경이라면 한 번쯤은 겪어보는 주취자의 잔해물들이 순찰차에 도배된다. 팀의 순경이 그 잔해물들을 치운다. 경찰을 꿈꾸는 수험생이라면 한 번쯤 봤을 드라마 ‘라이브’에서 정유미, 이광수가 순찰 차내의 잔해물들을 치웠던 장면을 기억하는가? 주취자가 얼마나 먹었느냐에 차이만 있을 뿐 그 장면 그대로 우리는 한정오, 염상수가 될 수 있다.



청소년이지만 레벨 3의 주취자가 있다. 술을 먹은 미성년자인데도 너무나도 당당하다. 나는 그렇다 치지만 함께한 주임님께 욕설 아닌 욕설이 날아온다. 딱 봐도 주임님의 아들뻘인데 듣는 내가 다 불편하다. 욕설은 물론이거니와 내가 내 돈 내고 술 먹겠다는데 경찰관이 무슨 상관이냐는 뻔뻔한 태도. 내 돈 내산은 신경 쓸 바가 아니지만 청소년이 술을 먹고 있으니 주민의 신고가 들어오는 것이 아니겠는가.(아마 얌전히 먹지 못했으니 신고까지 들어왔지 싶다. 대부분 술집을 출입할 수 없으니 어떻게 구했는지 공원에서 먹더라.) 미성년자의 경우 부모님과 마주해야 그나마 정신을 차린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큰 힘이 들지 않는 주취자들이다.



주취자 레벨 4부터 10까지는 욕설에 따라, 사건의 경중에 따라 나뉜다. 주취자 신고의 경우 술만 먹으면 상관이 없다. 하지만 사건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을 때에는 문제가 커진다. 주로 이런 경우에는 주취자 신고로 들어오기보다는 폭력, 가정폭력, 시비로 들어온다. 현장에 가보면 술에 취해 이런 일이 벌어진 경우가 있는 것이다. 일단 술이 들어가면 폭력적인 성향을 띄는 사람들이 주로 지구대, 파출소까지 오게 된다. 그 성향은 사건을 처리하는 동안에도 계속된다. 본인의 혐의가 무엇이냐며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며 따지고 든다. 알아듣게 설명을 해줘도 소용이 없다. 그 정도 했으면 지칠 만도 한데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 지치지도 않는다. 결론 없는 대화는 반복된다. 대화의 시도조차 무의미하다. 그냥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싶다.




우리들이 처음 술을 먹었을 때를 기억하는가



내가 술을 처음 맛보았을 때는 고등학생 때였다. 미성년자 음주를 한 것이 아니었고, 엄마가 요리하려고 담아놓으신 컵 속의 술을 물인 줄 알고 벌컥 들이켰다가 쓴맛을 봤던 기억이 있다. 세상에나 쓴맛을 그렇게 대용량으로 볼 줄이야! 그렇게 첫 술맛을 본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때의 술과 지금의 술은 다가오는 느낌이 다르다. 이제는 우리는 심심치 않게 술을 찾는다. 술에 관한 명언도 많지 않은가? 술은 마음을 터놓게도 하고, 조금은 가까워지게도 하고, 상대방에게 진심을 전하는 수단이 되어줄 수도 있다. 아무리 적당히 먹으려면 뭐하러 먹는 술이라지만 기분 좋은 선에서 음주를 한다면 세상이 참 아름다울 텐데.




순경이 주취자를 마주할 때



경찰을 준비하는 수험생이라면 한 번쯤은 봤을 경찰 드라마 ‘라이브’. 주취자를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주인공 정유미, 이광수가 될 수 있다. 드라마에서 묘사한 그대로 우리는 주취자를 마주하고 잔해물들을 치우게 된다. 또 순경으로써 처음 주취자를 마주할 때 인사불성인 주취자를 상대로 욱하면 안 된다. 분명 여태 들어보지도 못한 욕설들이 난무할 것이다. 나 역시도 주취자에게 평생 들을 고강도의 욕설을 다 들어본 것 같다. 본래의 성격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성격이라 크게 남지는 않았지만 성격에 따라 주취자와 싸움이 붙는다거나 집에 가서 하나하나 되새김질해보며 상처를 받는 경우가 있다. 주취자를 대할 때에는 마음을 어느 정도 내려놓고 대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주취자의 언행은 당신을 향한 것이 아니랍니다!




주취자를 보신다면 신고해주세요



친구 중 한 명이 술에 취해 경찰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길거리에 누워 잔 것은 기억이 나는데 집에 들어온 것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엄마한테 한 소리 들으며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 사건이 있던 이후로 그 친구는 길거리에서 자고 있는 주취자를 보면 무조건 신고한다고 한다. 그날 누군가의 신고가 없었다면, 경찰의 도움이 없었다면 오늘 너네들 얼굴 봤을지 잘 모르겠다면서. 술에 취해 길거리에 인사불성이 된 주취자를 본다면 꼭 신고해주시길!



술은 묘약으로만 남았으면..

keyword
이전 10화정답이 필요 없는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