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마음으로 죽음을 생각하다
"재판장이 잔기침을 하고 나서 아주 낮은 목소리로 나에게, 덧붙여 할 말은 없느냐고 물었다....(중략)... 나는 빨리 좀 뒤죽박죽이 된 말로, 그리고 우스꽝스러운 말인 줄 알면서도, 그것은 태양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장내에서 웃음이 터졌다." - 알베르 카뮈, 《이방인》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본인이 아랍인을 살해한 것에 대한 재판을 받던 중, 재판장이 마지막으로 진술을 요구하자 자신의 행동의 이유를 태양이라고 댄다. 그는 사람을 태양의 뜨거운 햇살 때문에 죽였을지도 모른다. 행동의 원인은 아랍인에 대한 분노도 혐오도 아니었다. 우연히 주어진 상황, 충동, 그리고 태양이 그를 살인으로 이끌었다. 나는 나의 죽음에 대해 뫼르소와 같은 태도를 갖는다. 우연히 주어진 상황, 충동, 그리고 무언가가 나를 죽음으로 이끌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이것은 자살에 대한 예고가 아니다. 다만 나와 죽음의 사이가 가까워지다 못해 딱 붙어버리는 것은 그저 어찌 보면 '그럴 법하다'라고 할 만하다는 것이다.
이 브런치북의 주된 내용이 될 것들은 삶의 의미, 자살, 그리고 무가치함이다. 초반부에는 내 어린 시절을 담을 생각이다. 어린 시절 겪었던 심리적 우울과 불안의 경험들을 시간순으로 배치하여 내 태생적인 우울과 불안이 어떤 식으로 표상되었는지 알릴 것이다. 중반부에는 성인이 된 이후의 사고의 흐름과 변화를 담을 생각이다. 후반부에는 선천적으로 불행한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사유를 담고자 한다. 안타깝게도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은 누구도 내리기 힘들 것이다. 나 또한 아직 이에 대한 답이 명확지 못하다. 글을 쓰며 좀 더 가시화되길 바란다.
존재하는 많은 언어가 사람을 규정하는 데에 사용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언어적으로 규정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나는 그러한 것에 큰 불편함이 없고, 그러한 방식이 이 글을 읽는 데에 글쓴이의 생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여 나를 정의해 보고자 한다. 나는 니힐리스트, 인식론적 회의주의자, 현상학적 자아이자 우울장애 환자이다. 이 말들이 너무 어렵다면 그냥 읽고 넘겨도 된다. 이후 글들에서 이 정의들의 이해여부가 읽기에 큰 무리를 주지 않을 것이다.
니힐리스트는 한국어로 흔히들 허무주의자라고 번역되곤 한다. 니힐리즘이 무엇인지에 간략히 설명하자면, 절대적 가치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도덕, 생명, 평등, 그리고 행복과 같은 보편적 가치들을 포함한 모든 것에 절대적 가치를 부정한다.
인식론적 회의주의는 세상을 감각기관의 경험으로만 인지 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자신의 감각경험 바깥의 세상이 실존하는지 절대 알 수 없다.
현상학적 자아는 변하지 않으며 하나로 존재하는 자아를 부정하며 인식 가능성을 부정한다. 받아들이는 것은 자아가 아니라 자아가 겪는 경험만이 인식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울장애 환자는 설명이 훨씬 간단하다. 나는 23년도 군 전역 후 3개월 뒤인 4월에 우울장애 진단을 받았으며, 실제 우울감과 불안의 경험은 유소년기부터로 장기적이다.
그 누구도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나를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나를 온전히 표현 가능하지 않다. 다만 이는 독자로 하여금 글을 읽는 데에 도움이 되기 위한 따름이다. 당신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마음껏 규정하고 떠들 수 있다. 단지 내가 바라는 것은 그것이 나를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프롤로그의 인용 후 문단에서 드러나듯, 나는 행복하지 않다. 그리고 그 원인을 선천적으로 부여받은 우울한 신체, 내 우울한 뇌에서 찾았다.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마치 청소년기를 거치며 스스로가 못생겼다는 객관적 인식을 겪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남들에 비해 선천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갖는다는 사실은 스스로 하여금 해소 불가능한 불평등이라는 부조리함을 겪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니힐리스트로써 내 선천적으로 우울한 신체를 인정한다. 이는 내 우울감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직 명확하게 존재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대 의료기술로는 아직 내 뇌를 뜯어고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울한 뇌를 타고난 사람으로서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초중장을 제외한 종장에서는 대부분 이러한 이야기를 다룰 것이다. 우울하게 태어났다는, 어찌 보면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고도 할 수 있는 부조리함을 겪고서 어떻게 죽지 않을 것인지. 그것에 대한 주된 논의를 하고자 이 브런치북을 발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