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의 고고학 Nov 09. 2022

낙화落花 그리고 낙하落下 죽음 속에서도 영원한 희망을.

봄을 기다리며..

혜화동 낙산자락 어딘가..


"가을의 끝, 겨울의 시작이다.
어느새 길가에 나무들은 겨울을 날 준비를 한다.
 봄날에 찬란한 햇살에게, 푸르른 하늘에게
벗이 되어주던 녹음綠陰은 이젠 없다.
찬바람 속에서, 앙상한 가지만 초라하게 서있다.  
세찬 바람이 분다. 의지와 상관없이, 어여쁜 잎들 떨어진다.
한때 푸르렀던 내 안의 생명은, 찬바람에 생명을 내어주며 낙화落花한다.
그 낙화에 내 초라함은 몸서리친다.
생명이 움텄던 나뭇가지엔, 이제 공허와 허망이 자리한다.
내 안에서도 갈변을 겪는다.
어여쁜 잎들아, 탓 없이 부는 바람에 어찌할 수 없는 내가 미안하다.
 너에게 난 이제 말라버린 가지일뿐이다.
난 그저 추운 겨울 넘어가면,
너 다시 이쁘게 초록잎 품을 수 있을거라 희망만할 뿐.
그래도 내년 봄엔 새 잎이 돋겠지.
그리고 또 죽음, 비허의 순간을 맞닥뜨리겠지.
이 낙하落下의 반복 속에서, 희망과 죽음이 반복된다.
 희망과 죽음의 반복 속에서, 영원을 꿈꾼다.
허망과 공허의 굴레를 넘어 영원을 꿈꿀 뿐이다.
 겨울은 희망의 계절.





 이 글을 쓴지도 3년이나 되어간다. 스물 아홉에 썼던 글이라 그런지, 힘이 잔뜩 들어가있다. 20대를 돌이켜보면, 매해 설렘 속에서 가을을 기다렸던 기억, 쓰라리게 가을을 탔던 기억이 난다. 뜨거운 여름을 지나,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좋아하던 셔츠와 니트를 꺼내 입는 것이 내 루틴이었다. 저물어 가는 年를 정중히 떠나보내기 위한 일종의 예식(?)이랄까. 한껏 멋을 부리고, 한동안 안 뿌리던 향수까지 뿌리고, 그렇게 찐하게 가을을 보내야지만, 혹독한 겨울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왜 그리 삶이 벅찼는지 모르겠다. 불과 3년 전이지만, 저 글을 쓸 당시에만 해도, 학교 강의실에서 혼자 '이뤄질 수 없는 죽음을 선망'하며, 한 글자 한 글자 어렵게 써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이 지긋 지긋한 삶이, 편안하고 아주 간편히 마무리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 죽을 용기는 없어서, 나 대신 죽어가는 잎사귀를 바라보며, 대신 아파하며 글을 써내려 갔던 마음. 아버지의 부재不在, 어머니의 병환病患. 누나의 절망.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던 20대를 회고하며, 항시 마음은 뭉게져 있고, 짙은 그림자 속에, 방황했던 20대의 나를 대신 위로하려 썼던 마음.


 여전히 삶은 낯설고 버겁다. 그런데 바람이 차가워지면 질수록, 하늘은 청명해진다. 가을과 겨울, 모두 죽음의 계절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하늘은 맑고 예쁘다.



p.s 여기 로마는 서울의 가을 정취와 사뭇다르다. 처음 보내는 가을이라, 아직 많이 낯설다. 단풍나무가 없어서 그런지,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가 없다. 서울가을의 정취가 그립다.

 

매거진의 이전글 밤의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