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성장 소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Narziß und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성장 소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Narziß und Goldmund』는 ‘우정의 역사’라는 부제에 걸맞게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라는 두 인물의 우정 속에서 밝혀지는 삶의 신비를 그려낸다.
@ 수도자를 꿈꿔 수도회에 입회한 골드문트는 나르치스와의 만남을 통해 본래 자신 안에 내재 되어 있는 ‘자유에 대한 갈망’을 엿보게 된다. 이를 계기로 골드문트의 방랑이 시작된다. “여러 날 동안 여름 들판의 손님이 되어보기도 했고, 몇 주일씩 숲속에서 지내기도 했으며, 며칠씩 눈 속에서 보내며 죽음의 불안에 시달리고 죽음 언저리까지 가보기도”한 골드문트는 수도원 내에선 결코 접할 수 없는 여성 편력, 살인, 절도, 죽음의 체험 등과 같은 삶의 민낯을 목도하게 된다. 골드문트는 그러한 경험 속에서 삶에 염증을 느끼기보단, 오히려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삶 이면에는 역설적으로 생의 의지와 죽음의 공포가 담겨있음을 파악하게 된다. 골드문트는 이러한 깨달음 속에서 예술적 충동을 느끼며, 조각가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그간 자신이 깨달았던 바, 곧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삶의 신비를 예술적 경지로 승화시켜 여러 조각상들에 각인시키고자 한 것이다.
@ 뜻밖의 사고로 죽음의 문턱 앞에서 서게 된 골드문트는 마지막으로 삶을 회고하며 자신이 체험한 삶의 신비를 궁극적으로 마리아 조각상에 입히고자 한다. 그러나 작품이 채 완성되기도 전에 죽음을 맞게 된다. 죽기 직전 골드문트는 나르치스에게 이러한 말을 남긴다. “그런데 나르치스, 자네는 나중에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작정인가?” 그간 삶의 신비를 정신적인 차원에서만 추구하고자 했던 나르치스에게 이 질문은 진정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나르치스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논리적 차원에선 알았을지언정, 실존적인 차원에선 공백으로 남겨 두었기 때문이다. 생의 마지막 시기에 골드문트 없이 홀로 살아갈 나르치스가 풀어야 할 숙제는 ‘죽음’에 대한 관념을 직접 삶으로 살아내면서 체현하는 것이리라.
@ 삶의 의미를 종교적 수행 방식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수도자 나르치스, 반면 매순간 죽음을 체험하며 삶의 신비를 온 몸으로 담아내 예술적 경지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예술가 골드문트. 각자 지니지 못한 성격적 탁월성을 서로가 서로의 모습 속에서 발견하고자 하는 역동이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전체를 이끌어간다. 한편 골드문트가 방랑의 삶을 시작한 이래 서로 만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둘은 각자의 인격 안에서 서로를 만나게 된다. 각각의 인격 안에서 자신들이 결핍된 부분들이 상대의 자아로 상징화해서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즉, 골드문트의 방랑 속에서 나르치스의 부재는 골드문트로 하여금 자신 안에 결핍된 정신적 자아로써 등장하게 되고, 나르치스에게 골드문트의 부재는 자유를 탐하는 자아로 상징화해서 나타난다.
“ 사랑하는 친구여, 우리 둘은 태양과 달이며 바다와 육지다. 우리의 목표는 서로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인식하고 서로가 가지고 있는 것을 서로 보고 존경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 이러한 두 자아의 대결 속에서, 헤세는 근본적으로 자아 내에 있는 두 성향, 곧 지성과 감성 간의 조화를 찾고자 한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