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의 고고학 Feb 25. 2023

진정한 '가족'이 되기까지

엄마가 떠났다. 아빠가 있는 곳으로

지난 달,

급하게 한국에서 걸려온 전화로,

로마에서 부랴부랴 귀국행 비행기를 탔다. 


어벙벙한 순간 속에서, 

기어코 언젠가 일어날 일이 내게 다가온 것이다. 

현실을 부정하려 해도, 변할 것은 없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인지 여전히 모르는 상태로. 

갑자기 떠난 아빠와 달리,

엄마는 9년 동안 병상과 침상을 오고가며, 당신 스스로 죽음을 준비했지만,

자식인 나는 여전히 그 죽음이 무엇인지 모른다.

머리가 뿌연 상태로, 급하게 귀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엄마를 보내고, 주변 일들을 마무리하며 보낸

한국에서의 시간은 슬픈 시간이었지만, 한편으론 행복한 시간이기도 했다. 

엄마에 대한 상실감 와중에,

역설적으로 그간 어머니가 나를 사랑해준 것들을 더 깊게 느꼈던 순간들이기도.. 누군가의 소중함을 알려거든, 그 부재가 있어야만 더 깊게 느낄 수 있다는 상투적인 표현이, 이제야 내 마음 안에서 생명력을 얻게 된 것 같다.

가족에 대한 의미의 외연이 더 다채로워진 것 같다. 단순히 혈연으로 맺어진 것이 아닌, 더 정신적으로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된 것 같다.

아빠를 여의였을 때도 그랬지만,

엄마를 보내 드리면서,

이제 정말 누나랑 나만 이 세상에 남았어. 누나도 혼자 살고, 나도 혼자 살면서, 서로 오갈 고향 같은 곳이 없어진거지. 

엄마 앞으로 된 여러 재산 정리 하며, 상속 절차를 밟는데,

형제 간은 법적으로 남이나 다름 없더군. 같은 뱃속에서 나왔지만, 법적으론 남이라네.

부모가 없으면, 결국 형제는 남인가보다.

그런데 이렇게 큰 일 겪으며, 

누나랑 나는 

이제야 진짜 진정한 가족으로 거듭난 것 같다.

예전엔 엄마 아빠와 함께 있을 땐, 나름 가족들 사이에 서로가 서로를 숨기며 살 숨구멍이 있었는지, 가족들 각각 서로를 잘 몰랐던 것 같다. 그저 가족 구성원으로, 아빠는 아빠, 엄마는 엄마. 누나는 누나였을뿐. 그들 각각 짊어진 그림자나 속마음을 서로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알려주지도 않았지. 그저 각자 가족 구성원 내의 역할 안에서만, 관계를 맺었을 뿐이었지.  .

그런데 역설적으로 아빠가 세상을 떠나니, 그 빈자리 안에서 그의 삶의 무게와 어려움을 알게 됐고, 마찬가지로 엄마가 떠나니, 그간 살아오며 힘들었던 그녀의 순간들 아픔들을 알게 되는 것 같네. 

다행인건지 이 깨달음 안에서, 누나에게도 슬픔이 있거나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네. 이제 둘만 남으니, 그 어디에도 숨을 곳 없이, 고스란히 서로가 서로에게 보여줄 수밖에 없는 것이지. 이젠 어떤 역할로서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서로 알게 된 것 같네..

그래서 더 진짜 가족이 된 것 같다.

진작 일찍이 알았더라면, 부모님 생전에 더 잘해드렸을텐데.. 참 아쉽네.

늘 그렇듯이, 나중에야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것이 우리들 삶이라는 이 클리셰는 나를 비껴가지 않았네. 아주 정직하게 나한테도 적용됐다.

사는거 참 힘든 것 같다.

아무리 힘들어도, 가족끼리 서로 몰라. 결국 우린 모두 혼자.

누군가를 이해하고 공감해보려는거 

어쩌면 환상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를 위해, 너를 위해, 서로가 공감하려 노력한다는거

참 감사한 일이야.

어쩌면 내가 힘들기에, 힘들어 보이는 너를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 누구도 나를 위로해주지 못하기에, 내가 누군가를 위로하는 모습을 통해, 

나 자신을 위로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제 로마에 도착해서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엄마한테 전화할 뻔했다

잘 도착했다고 말이지.

오늘 아침에도 방 정리 하고 좀 쉬다가, 속으로 “엄마한테 한 번 전화해볼까?”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지. 참 웃긴 일이지. 

이제 편하게 전화할 곳이 없다는거

칭얼댈 곳이 없다는거

어떤 목적 없이 대화할 수 있는 곳이 없다는거

아무 생각 없이 편히 있을 수 있는 곳이 없다는거

엄마의 부재이지만,

결국 나의 ‘부재’임을 느껴.

내 뿌리가 없어졌다는 느낌.

진정 외로움과 적막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아직은 실감이 가지 않아, 마치 머리 한 대 쎄개 맞은 것마냥

머리가 멍해, 그냥 생각 없이 웃고,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나를 위로 하려 하면, 

괜시리 그게 미안하고 불편해서, 오히려 용기 있는 척, 다 이겨낸 척,

그들에게 ‘나는 괜찮다.’하며 역으로 그들을 위로해준다. 웃으면서 말이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저 속으로 되내인다.

엄마가 최선을 다했듯이

나도 최선을 다해 살아봐야지. 

엄마는 나 때문에 최선을 다했는데,

나는 엄마가 준 생명에 보답하려 최선을 다해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시끄러운 내면일지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