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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20)
쉬운 말,어려운 말,웃긴 말

-쉽고도 어려운 환자와 보호자 교육-

by 에스


"환자분, 오늘 밤 열두 시부터 드실 수 있는 건 공기밖에 없어요."

금식 시간을 설명하며 선생님이 하셨던 말입니다.


image.png?type=w773 AI 생성 이미지(출처: chat GPT)



병동에 있을 때, 말을 정말 웃기게 하는 선생님이 한 분 계셨어요.

환자에게 “똥 쌌어요?”, “폐가 쪼그라드니까 숨쉬기 운동 잘 하세요.”

“지금 위 수술했는데 밥 먹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위장이 꾸물꾸물 움직이면, 꼬매놓은 데서 피가 다시 나겠죠?”


그 당시에는 이런 말투가 너무 가벼워 보였어요.

전문가답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이 문장 하나하나가 얼마나 환자 친화적인 언어였는지를요.



간호사는 환자와 대화할 일이 참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가 바로 환자와 보호자 교육이에요.

물론 요즘은 많은 분들이 스스로 공부도 하고,

인터넷 검색도 하시지만,

우리는 항상 비의료인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설명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이해하기 쉬운 단어 선택과 설명 방식이 필요하죠.

그리고 이런 쉬운 설명은 설득도 훨씬 쉬워요.


예를 들어,

“위 수술을 했으니 재출혈을 방지하기 위해 금식하세요.”보다는

“위 수술했는데, 위장이 움직이면 꼬맨 데가 다시 피나요.”

라는 설명이 환자분들에겐 훨씬 더 와닿습니다.



또한 환자 교육에는

‘내가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도 중요합니다.


학생 시절 많이 들었던 말이 있어요.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면서 공부한다’는 말.

환자에게 설명하려면

그 내용을 먼저 나 자신이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내가 아는 단어(의학용어)를

더 쉬운 언어로 바꾸어 말할 수 있어요.



예전에 석션을 처음 해줄 때 일입니다.


그때 보호자에게 “석션하겠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산소포화도가 떨어지고 있었고,

신규였던 저도 당황한 상황이었죠.


도와주는 선생님들이 있었지만

등줄기엔 땀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보호자분, 지금 환자분 산소포화도가 떨어져서 석션 한 번 할게요."


정확하진 않지만, 이런 식의 말이었을 거예요.


보호자는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고,

제가 석션하는 모습을 보고는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냐”며 화를 내셨습니다.


그때 저는 아직 너무 미숙해서

“가래를 물리적으로 뽑을게요. 좀 불편해요.”

같은 설명조차 입 밖에 꺼낼 수 없었어요.


결국 당황한 보호자와

그 사이에서 상황을 설명하는 윗년차 선생님들 사이에서

저는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느낍니다.

쉬운 말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말이라는 것.


가볍게 들릴 수 있지만

그 안에는 깊은 이해와 진심이 담겨 있어야 하니까요.



이제 저는 ‘있어 보이는 말’보다

‘전달되는 말’, ‘와닿는 말’을 고르고 싶습니다.


때로는 “공기만 드세요~”라는 한 마디가

그 어떤 의학 용어보다도

환자의 마음에 더 정확하게 닿을 수 있다는 걸,

오늘도 근무하며 실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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