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 선배님 인생이 재미가 없어요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기 위해서는, 철저히 허무하기만 한 시간이 있어야 한

by 시루

오랜만에 강연의 연사로 서기로 했다. 대상은 중학교 1학년, 주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법”. 이제는 나이차이가 몇인지 세기도 어려운 친구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 결국은 가장 자신 있는 주제로 잡았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부터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건 아마도 아무런 꿈이 없던 시기를 지나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싶다면, 철저히 허무하기만 한 시간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를 진짜로 사랑하고 싶다면, 철저히 외로운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그렇게 사무실에서 한참 동안 자료를 만들던 날이었다. 몇 시간이고 로댕의 동상처럼 컴퓨터만 쳐다보고 있는 스스로가 안쓰러워, 잠깐 어깨를 피고 실험실로 향했다. 당장 해야 할 실험은 없지만, 간단하게 몸을 움직일 수 있을만한 잡일이라도 없을까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후배 한 명이 들어왔다. 그녀는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말한다.



“선배님, 인생이 재미가 없어요. 아무 의미도 없는 것 같고. 왜 이렇게 허무하죠.”

“뭐 인생의 의미가 없어? 갑자기 오자마자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는 푸핫 하고 웃었다. 너 사춘기야? 깔깔 웃자 후배는 자신은 진지하다며 입을 삐죽거렸다. 인생을 착실히 살아나가는 친구였다. 그러나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기 쉬운 세상이다. 혹은 삶의 의미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어려움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모든 귀중한 가치들은 어렵게 얻게 되는 것처럼.



“내가 방금까지 그 질문에 대한 방법에 관한 자료를 만들고 있었는데 말이야… 그런 걸 보면 애들 고민이나 어른 고민이나 별 다를 바 없다 싶어. 사실 인생의 고민은 어릴 때부터 다 거기서 거기일지도 몰라. 하지만 중간에 풀 수는 없고, 답은 살면서 영원히 찾아내야 하는 거지. 마치 시지프스의 형벌 같네. “



후배는 그 자료 저한테도 보내주셔야겠는데요-라고 했고, 나는 중학생 용이니 너에게 딱이네 라며 웃었다. 그녀는 곧 다시 찾아낼 것이다, 똑똑한 사람이니까. 시간이 지나면 태풍뒤의 잔재에서 보물을 발견하듯이 진주가 드러날 것이다. 그것을 찾으려는 의지만 잃지 않는다면.



"네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만 확실하다면, 어디든 반드시 도착하게 되어 있어. 충분히 걷기만 한다면 말이야."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