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원래 그렇다는 말 따위는 믿지 않는다
증권사 애널리스트 중에는 반골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 많다고 한다. 내러티브를 만드는 직업이라면 이런 성향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과 세상을 제대로 분리할 줄도 모르는데, 어떻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쓸 수 있겠는가? 거스를 반 + 뼈 골. 반골은 즉, 기존의 틀에 저항하는 성향을 의미한다. 한국에서는 애석하게도 ‘반항’이라는 단어처럼 쓰이고는 하는데, 사실 반항은 맥락 없이 저항만 하는 것에 가깝고, 반골은 기존에 정해져 있는 것들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 단어가 나라는 사람을 설명해 왔다고 느꼈다. 그건 한국의 직장인으로서 평판에 꽤나 불리해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나에게 선택권이 있던 게 아니었다. 괜히 뼈 골자가 붙었겠는가? 원래부터 이렇게 태어났다. 그래서인지 부딪히는 일들이 종종 있었는데, 주로 “그냥 좀 해“와 ”그걸 왜 해야 하는데? “의 싸움이었던 것 같다. 특히 학창 시절에는 국어 선생님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언어지문의 경우 해석의 여지가 너무 많다는 것이 이유였다. 고등학교 중간고사가 끝난 후 나는 선생님에게 찾아가 물었다.
“왜 정답이 ‘슬픔’이에요? 이 화자의 마음은 ‘씁쓸함’ 쪽에 더 가깝다고 생각해요.”
“시루야… 제발 수업 좀 들으면 안 되겠니? 수업시간에 슬픔이라고 했잖아.“
지문을 읽고 내가 느낀 마음과 수업을 듣는 게 대체 무슨 상관이던가. 수업에서 정답을 알려준다 한들, 납득이 가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전국 모의고사는 1등급이었지만 내신 국어는 늘 5등급이었다. 친구들은 “선생님 싫어서 일부러 그러는 거지?” 라며 조심스레 물어봤지만, 말했듯이 그런 반항적인 태도는 전혀 아니었다. 누군가가 정해 놓은 정답에 동의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수학과 과학은 단순해서 좋았다. 확실한 정답이 있었고, 어떻게 풀든 정답만 맞으면 됐다.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명확함이 좋았다.
문제는 사회에 나오니 복잡해졌다는 것이다. 늘 과도한 업무보다 나를 죽일 듯 괴롭게 만드는 것은,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제발 시키는 대로만 하라 ‘는 태도였다. 그래서 일을 더 잘하려고, 확실한 지위를 가지려고 노력했다. 그래야만 시키는 일을 거부할 수 있는 힘이 생기니까, 내가 원하는 정답을 찾는다고 했을 때 명분을 가질 수 있으니까. 인정욕구보다 중요한 건 자유였다. 생각한 대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 그게 뭐라고 그토록 가지기 어려웠나.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사람은 남의 의견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어떤 사람의 평판이 별로라고 한들, 직접 겪어보지 않는 이상 믿지 않는다. 누가 “그건 해봤자 안돼”라고 한들, 직접 실패해 본 것이 아니라면 그냥 했다. 세상이 원래 그렇다는 말 따위는 믿지 않는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 중 제대로 시도해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시도해 보고 실패했다고 한들, 그게 나랑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누군가는 나를 재수 없다고 말하겠지만, 그게 왜 재수가 없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런 이야기다. 내가 반골이라네, 하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