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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4. 여기 두 가지 질투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은중과 상연

by 시루

‘질투’를 의미하는 영어는 두 가지가 있다. Envy와 Jealous. 차이는 간단하다, 없는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마음은 envy 가진 것을 빼앗길까 봐 불안한 것은 jealous 다. 나는 예술적 감각이 없는데,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를 보면 I envy you인 거고, 내가 좋아하는 남자애가 다른 여자와 이야기하면 I’m jealous to her 인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좋아하는 남자는 소유한 상태가 아닌데 왜 jealous일까? 이 기준은 ‘심리적 소유권’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여기, 두 가지 질투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은중(김고은 배우)은 상연을 질투한다. 상연은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심지어 집도 잘 산다. “뭐 저런 애가 다 있어?” 학창 시절, 은중의 마음속에서 상연은 늘 공주님이었다. 대학교 사진동아리에서 다시 만나게 된 둘. 상연의 작품을 보더니 은중은 남자친구에게 자신이 부족한 것 같다고 말한다. 남자친구는 기분을 풀어주려고 하지만, 은중은 화를 낸다. 이 장면의 대사가 꽤나 인상적이다.



“상연이 사진이나 선배 사진을 보면, 내 것은 너무 평범해 보이는 것 같아.”

“괜찮아, 뭘 그런 거 가지고. 너한테는 내가 있잖아!”

“뭐?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아무리 선배가 멋있고 자랑스러워도 선배가 한 건 선배 꺼야. 내 것이 아니고!“

“아니… 내 말은 네 것도 충분히 괜찮다고…”

“괜찮은 걸로 안된다고!”


“얜 이길수가 없다. 상연이 옆에 있으면, 내가 가진게 너무 보잘 것없고 평범하게 느껴진다.“



반면에 상연(박지현 배우)도 은중을 질투한다. 타고나기를 예민했던 상연은, 주변 사람들이 전부 은중이만 좋아하는 것 같다고 느낀다. 넓지 않은 상연의 세계에서 오빠와 엄마는 그녀의 전부였는데, 그 둘도 은중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어느 날 오빠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며 그녀를 떠나고, 그로 인해 엄마와의 관계도 처참히 무너진다. 그러다 텅 빈 상연의 세계에 한 명의 구원자가 등장한다. 오빠의 오랜 친구이며 이름도 같은 ‘상학’, 채팅으로 그와 연락하며 마음을 키워오던 상연은 드디어 그를 찾아 실제로 만나게 되지만, 하필 그가 은중의 남자친구인 것을 알게 되며 절망한다. 또다. 자신이 사랑한 모든 사람은 은중을 더 사랑한다.




“오빠가 은중이한테 카메라 준거 알아요?”

“카메라?”

“그 필름… 오빠가 떠나기 전에 은중이한테 준 카메라 안에 들어있던 거거든요. 그거 유서예요. 보자마자 알았어요.“

“…”

“나한테는 인사도 없이 갔어요. 은중이한테는 카메라까지 줘놓고… 그래서 은중이한테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 거예요. 오빠의 이야기라도 내가 먼저 알고 싶어서.“



”죽은 오빠 이야기 만이라도 제가 먼저 알고 싶어요, 나 혼자만. 누구보다 먼저“



재밌는 것은 질투가 극명히 보이는 이 두 장면이다. 둘은 제 3자인 상학에게만 질투를 털어놓는다. 둘이서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건 기껏해야 서로의 가난 정도다. 어릴 때는 은중이 더 가난해서 부끄러웠고, 현재는 상연의 집이 망해서 신세 지기 민망하다는 그 정도. 가난이야말로 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가벼운 이야기니까. 마음속에 있는 뿌리 깊은 질투는 꺼낼 수가 없다. 그건 나를 너무 초라하게 만드니까. 가난이 아니라, 그 질투가 나를 너무나 보잘것없게 만드니까.



은중의 질투는 Envy였고, 상연의 질투는 Jealous였다. 은중에게 상연은 늘 자신이 닿지 못할 대단한 사람이었고, 상연에게 은중은 늘 자신이 되지 못하는 사랑받는 사람이었다. 삶은 어떤 식으로든 가장 원하는 한 가지는 주지 않는다. 혹은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지지 못한 것을 가장 원하게 되는 저주에 걸린 것일 수도 있다. 그 저주의 이름이 질투가 아닐까. 영어로는 두 개로 나뉘어지는 그 단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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