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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3. 이별해서요, 헤어질 때마다 글을 썼어요

by 시루

오랜만에 글을 쓴다. 13번째 글을 쓰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013’ 이라는 숫자를 단 초고만 5개가 넘었다. 글로 붙잡아 보려 하다가 놓아준 것이 그만큼 된다는 뜻이다. 나는 원래 겨울에 글이 더 잘 써진다. 그렇다면 아직 겨울이 오지 않은 걸까. 혹은 내 안에 무언가 너무 많아 입구에서 막혀버린 걸까.



“어쩌다 글을 쓰게 됐어요?”

“이별해서요. 남자친구와 헤어질 때마다 글을 썼어요”



최근에 브런치 팝업전시에 글을 실으면서, 주변 몇 명은 이제서야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글을 쓴 지는 오래되었다. 고등학교 때 좋아하던 선생님에게 쓰던 편지를 시작으로, 스무 살 첫 연애부터 지금까지 쭉.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나를 붙잡아주던 건 이것밖에 없었으니까. 지인은 전시회를 보러 와 어쩌다 글을 쓰게 되었냐고 물었다. 글을 계속 쓴 이유, 그건 이별해서였다. 나는 그때부터 계속 이별해 왔기에 아직도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랑 헤어지고 나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친구들이랑 술을 마시는 것도 스스로 마음이 좀 정리되고 나서야 할 수 있죠. 그래서 글을 썼어요. 하지만 글도 바로 써지지는 않아요. 정말 아플 때는 죽과 약도 들어가지 않는 것처럼, 이불속에 숨어 며칠을 앓고 나서야 펜을 들고 제 마음을 봤어요. 그렇게 계속 썼어요.“



언젠가 갔던 북토크에서 안희연 시인은 이런 말을 했다. “글 쓰는 건 직업이 아니에요, 그냥 ‘업’이죠.” 그 말을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맞다, 글은 늘 나의 업이었다. 이별도 나의 업일 지도 모른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이별을 할 수밖에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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