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 떠나야 할까
그대는 노예인가? 그렇다면 그대는 벗이 될 수 없다
그대는 폭군인가? 그렇다면 그대는 벗을 가질 수 없다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作]
오랜만에 글을 쓴다. 줄곧 이렇게 글을 쓰고 싶었으나, 시간도 감정도 여유가 되지 않았다. 그에게는 간결하고 짧은 문장만 받았다. 더 이상 굳이 답을 하지 않았다. 참으로 건조한 이별이다. 다만 이번 일로 배울 점이 있었으니 되었다- 하고. 앞으로는 좀 더 좋은 안목을 기르리라 하고.
우리는 언제 떠나야 할까. 흔히들 그러듯 박수칠 때 떠나라 하지만, 박수받지 못하는 일에는 타이밍을 잡기가 어렵다. 공장으로 파견을 가게 되면서 한 동안은 공장 사람들에게 ‘퇴근하고 여기서 뭐 하세요?‘를 물어봤었다. 최근의 나는 후배들에게 ‘혹시 회사를 떠날 생각 있어요?’를 물어본다. 마음은 항상 있죠!라고 말하는 후배들을 보며, 아직은 때가 아니겠구나 싶다. 때가 되면 저절로 알게 된다. 슬프게도, 끝이 되었다고… 나는 언제나 그랬다. 이때까지 남자친구들에게 이별을 선언할 때도, 마음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간 것은 아니었다. 그저 막연히 알게 된다. 아 오늘이구나 하고. 회사 일도 그렇다. 도저히 못해먹겠다고 화를 내다가도 나는 결국 제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다가 알게 된다.
아…
지금이구나
너무 울어서 눈은 퉁퉁 부었고, 머리에서는 삐 소리가 났다. 예전이었으면 화장실에서 얼굴을 진정시키려는 노력이라도 했겠지만, 화장을 아무리 해도 가려질 것 같지는 않아 그냥 사무실에 앉아있었다. 그래도 보고자료는 만들고 가야 한다니…
부서장님 저는 why가 중요한 사람입니다. 갈 필요 없는 공장파견도, 과제가 성공했으니 양산단계까지 맡기로 리더로서 책임지고 내려간 겁니다. 그런데 제가 6개월 동안 준비하던 과제 관련 중국 출장을 ‘그저 공장장이 이유 없이 싫어하니까’ 가지 말고, 리더인 제가 과제일도 아닌 공장일에 집중하라니요. 저는 파견을 왜 간 겁니까? 부서장님은 누구 편이십니까. 저를 팀원으로 생각하시긴 하는 겁니까. 윗 분들의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 일을 하지 말고 남의 일이나 하라는 것은 저를 도구처럼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너무 서운합니다.
복도에서 펑펑 울며 내 입에서 나왔던 문장은 회사에서 그리고 부서장에게 하기엔 적절치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그저 사람이라, 풍선처럼 터지고 마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그러면 그저 막연히 알게 될 뿐이다. 지금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