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란 그저 익숙한 무언가를 되찾고 싶은 마음일 수 있다
분명 그리움과 비슷한 어떤 감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수용소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다만, 나는 살아남았고, 살아남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조금이라도 편하고 안전하게 지내기 위해 날마다 소소한 노력들을 했고
작고 불안정하지만 내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곳도 있었다
거기 들인 노력과 시간을 버리고 떠난다는 게 조금은 갑작스럽고 아쉬웠던 것 같다
다시 낯선 환경에 던져지고 보니 그저 익숙한 것이 더 나아 보였을 수 있다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꼭 좋았던 무언가를 향한 것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그저 익숙한 무언가를 되찾고 싶은 마음일 수 있다.
[작별인사, 김영하]
일요일 오후의 나근함을 좋아한다. 토요일을 지나 주말에 적응이 된 몸이 가장 편하게 늘어지는 시간. 이 시간의 향기를 설명하자면 뭐랄까 이불에 얼굴을 묻고 느껴지는 섬유유연제 향, 아침의 수증기가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살짝 말랐을 때 느껴지는 향. 옆집 혹은 아랫집, 아니면 나보다 조금 일찍 일어난 상대방이 코를 흥얼거리며 만든 커피의 향.
사람의 오감은 섬세하지만 예민하지는 않다.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일정 수준의 맛만 확보된다면 그 뒤로 사람이 맛있다고 느끼는 감각은 심리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오랜만에 방문한 맛집의 음식 맛이 변했다고 느껴진다면, 내 마음의 변화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기억은 어떠한가. 우리의 기억은 향기에 영향을 받는다. 내 머릿속에는 일련의 정보들이 세워지고, 마지막으로 향기가 덮어진다. 향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향기와 기억의 관계를 알아버린 사람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by redolence_ 향기에 의해서 라는 의미의 바이레도. 창업자 밴 고햄은 향기와 기억의 관계성을 찾아 향수브랜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라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향은 복잡하거나 화려하지 않다. 그래서인지 르라보와는 달리 적은 개수의 향료를 배합해서 만든다고 한다. 그렇기에 바이레도의 향은 심플하고 추억만큼 강력하다. ‘순백’이라는 의미의 Blanche는 바이레도 하면 떠오르는 첫 번째 향으로, 나 또한 블랑쉬를 통해 바이레도라는 브랜드를 알았다. 바이레도의 매력은 흔한 감성이지만 흔하지 않은 향기다. 이전에 비누향을 언급하면서 샤넬의 no.5와 산타마리아노벨라의 프리지어를 말한 적이 있는데, 블랑쉬는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잘 지내? 사실 오랜만에 이 향이 생각이 났어. 예전에 너는 나한테 자주 향기가 난다고 말하고는 했는데. 꽃의 색깔에 따라 향기가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만약 하얀 장미의 향기가 따로 있는 거라면 나에게선 그런 향기가 난다고. 그게 너를 얼마나 편안하고 포근하게 안아주는지 설명하는 너를 볼 때면 이미 나는 너의 품에 안긴 것 같았어. 5월의 일요일 낮. 나는 아침잠이 많지만 맛있는 브런치는 또 좋아하거든. 너는 햇살이랑 함께 일어나 냉장고에 남은 재료로 색다른 음식을 만들어주고는 했어. 그런데 이상하다? 그 음식의 향기는 모르겠지만 그때의 향기는 기억나. 아주 포근한 향기야. 처음에는 약간의 장미향이 나는데 조금 있으면 석고의 느낌이 나는 파우더향기가 풍겨져. 하지만 다른 향수들처럼 시간에 따라 향이 빠르게 변하지는 않아. 처음 느꼈던 향기가 끝까지 계속 남아있고, 향이 바뀌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일정하지만 무언가는 바뀌었어 마치 우리처럼. 그러게 우리는 마지막까지 비슷한 것 같았지만 사실은 뭔가 달라졌을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