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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sy Oct 06. 2024

7. 혼자 있으면 상처받을 일은 없겠지만

사람은 사람에게 항상 영향을 줍니다

문 밖으로 나가지 않고 혼자 있으면 상처받을 일은 없겠지만
새로운 경험이나 새로운 감정도 느낄 일이 없겠지

우린 좋은 것도 나쁜 것도 겪으며 살아가
너는 그걸 선택할 수는 없지만, 때로는 나쁜 경험도 도움이 돼

지금 이 감정을 즐겼으면 좋겠어
혹시 언젠가 네가 상처받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내가 옆에 있어줄게

- 아홉수 우리들



  최근에는 짧은 텀을 두고 두 통의 장문의 메일을 쓰게 되었다. 하나는 상무님에게, 하나는 지인에게. 개인적으로 글을 선물하는 일을 좋아하지만, 적은 글자수에 내 마음을 농축시켜 보내는 것은 꽤나 피곤한 일이라(=아주 많은 애정이 필요한 일이라) 잘 쓰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번은 꽤나 이례적인 일이다. “팀장님께” 이 4글자의 제목을 보고 참조로 메일을 함께 받았던 나의 선배는, 얘가 드디어 퇴사하려고 하는 건가 철렁했다고 한다. 더 적합한 제목을 찾지 못해서요라고 웃으며 말했지만, 사실 그 네 글자는 나의 결의였으리라. 당신과 나의 신뢰를 지켜달라는 결의, 넘어서는 미래의 후배들이 윗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결의.



  언제인가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선배는 출장 가던 차 안에서 나지막이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요즘 내가 생각하는 나 자신이 아닌 것 같아. 예전에는 내 취향을 정확히 알았는데, 요즘은 모르겠어. 음악을 그렇게 좋아하던 나였는데, 그렇게 좋은 스피커와 음반을 다시 틀어도 즐겁다는 생각이 안 들어. 인간관계도 비슷해. 이러다 내가 아는 나를 잃어버릴 것 같아서 무서워 “  



 “선배님 혹시 완벽주의자세요? 저도 제가 완벽주의자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만약 1부터 100까지 블록을 쌓는 취미가 있다고 한다면, 1부터 60까지만 하고 모종의 이유로 잠시 그만뒀다가 시간이 지나서 다시 시작하고 싶을 때, 61번부터 다시 쌓아 올리려니 그렇게 좋아하던 게 재미가 없더라고요. 저도 그랬어요. 그럴 땐 눈 딱 감고 61번부터 70번까지만 해보세요. 왜 일도 아니고 취향에 이렇게 에너지를 쏟아야 하나 싶지만, 취향도 노력이 필요한 법이에요. 그리고 세상에는 다양한 인간관계가 존재하잖아요. 한쪽에서 선배님을 부정해도 다른 관계들이 선배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괜찮은 거 아닐까요, 주변 사람들을 만나세요, 한 사람을 지탱하는 건 수많은 기둥이잖아요. “


  지금 생각하면 사실 이 대답은 비슷한 고민을 했었던 나 자신이 ‘가장 듣고 싶은 이야기’였었던 것 같다. 나는 언제나 나 자신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남에게 해주곤 한다. 이것 또한 나의 애정에 대한 책임일까? 그리고 나는 오늘 또 비슷한 고민을 하는 친구에게 이 대답을 한번 더 들려주었다. 진심으로 그가 이 문장으로 인해 조금이라도 고뇌를 줄일 수 있기를 바라며.



  사람은 사람에게 항상 영향을 준다. 성인이 된 어느 시점부터 나는 이 말을 자주 되뇌곤 한다. 이 문장은 나 자신이 주변의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고, 또한 나의 사소한 행동과 말이 작게든 크게든 주변에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조심스러워진다. 내가 어떤 곳에 속해 있어야 하는지, 그리고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내가 만나는 인연 하나하나가 조심스럽다. 이렇게 나는 나의 애정에 또 책임을 저버려야 한다.



  나의 문장을 듣는 그대. 그대는 이미 나의 애정 안에 있다. 나의 책임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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