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 시절 매일 드나들었던 인터넷 전공 카페에는 교사들이 현장에서 겪는 각종 에피소드들이 날마다 올라오고 있었다. 학부모가 늦은 밤에도 “우리 아이 요즘 어때요?”라며 뜬금없는 문자를 보내오거나 학생들의 거칠고 직설적인 말에 상처를 받는 교사들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교사들 간의 따돌림과 험담으로 정서적 고통을 호소하는 사연도 단골처럼 올라왔다. 만일 시험에 붙었더라도 초예민한 성격의 내가 이런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했을 거라고, 그러니까 이쯤 해서 포기하기를 잘했다고, 나는 조금 구질구질 한 방법으로 나를 위로했다. 시험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포도 전략을 쓴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이 전략은 별 효과는 없었다. 나는 이런 종류의 스트레스까지도 몹시 부러웠기 때문이다. (남들은 웃을지 모르지만) 내가 교사가 되면 꼭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새벽에 경찰서에 가서 사고를 친 우리 반 학생을 데려와 말없이 따끈한 국밥을 먹이는 것'이다. (드라마를 너무 봤다)
여기서 빨간 펜으로 밑줄을 그어야 할 부분은 '우리 반'이다. 이것이 비정규직 강사만 해서 담임을 맡지 못했던 내가 이루고 싶었던 가장 큰 로망이었다.
"그래 어디 새벽에 전화받고 기어나가서 일처리하고 출근해봐라 그런 말이 나오나"
친구들에게 욕을 얻어먹었지만, 나는 그 허무맹랑한 로망으로 긴 수험생활을 버텼다.
가이드북대로 여행이 펼쳐지리라 기대하는 초보 여행자처럼, 나는 교직 사회의 버라이어티 한 현실을 모른 채 머릿속으로만 내 로망을 반복적으로 시뮬레이션하고 있었다.
친구들이 학교 생활을 아무리 '추적 60분'으로 이야기해도 나는 그 말을 드라마 '학교'로 받아들였다. 남들이 말하는 그 '못해먹을 교사 짓'을 나는 사실 너무나도 하고 싶었다.
결국 나의 신포도 전략은 실패했다. 나는 신포도를 보면서도 단맛을 느꼈던 것이다. 그 이유는 아무리 시어 터진 포도라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비정규직의 쓰디쓴 포도 맛보다는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신포 도라도 주워 먹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솝우화의 여우는 꽤 결단력 있는 놈이다. '저 포도는 시어서 먹을 게 못 돼'라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홀연히 그 자리를 떠났으니 말이다.
그 여우처럼 나는 결단력 있게 시험을 그만두지 못했다. 시험이 아닌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헤어진 연인을 붙잡는 것처럼 시험에게 질척거렸다. 떠나보내기에는 그 포도는 나에게 너무 달았다.
그 신포도가 왜 나에게는 달있을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