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꿀체리 May 14. 2020

시험 중독 탈출 프로젝트 3
-가질 수 없다면 버려라

   

                                               

나는 학교에서 도망치는 방법을 택했다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아이들을 계속 만나면 나는 환갑까지 시험을 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학교에 그만두겠다는 뜻을 전했다. 비정규직의 좋은 점은 이런 것이다. 귀찮은 송별회 따위는 하지 않는다.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이라 큰 욕먹지 않고 간단한 전화 한 통으로 끝낼 수 있었다. 후련했다. 아이들이 좋았지만, 일단 내가 살아야 했다. 이대로 시험을 계속 본다면 순수한 열정은 점점 사그라들고 오기와 아집, 속물적 욕망만 남을 것 같았다.      


알코올 중독은 술을 먹여 보면 알 듯이 (임용) 시험 중독은 학교에 가보면 증상이 나타난다. 교사들을 만날 때 보통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비이성적인 생각에 빠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나도 정교사가 되어 저런 귀찮은 업무까지도 멋지게 해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든다면 아직 중독은 아니므로 안심해도 된다. 그러나



 '저분은 얼굴도 이쁜데 직업이 교사라니, 돈 많은 남자를 만나 평탄한 인생을 살겠구나.' 

 '이 분은 며느리가 교사라고 시가에서 대접해줄 테니 얼마나 당당할까.'


라는 생각에 이른다면 이미 중독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이것은 객관적인 시각으로 하나의 직업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나처럼 공무원 시험 등에 몇 년간 노력과 시간을 들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충족되지 않는 욕망을 그 직업인들에게 투영해서 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그 직업에 대한 우상화를 한다거나 다른 직업을 폄하한다거나 하는 왜곡된 직업관을 갖게 될 수 있다. 생각이 꽉 막힌 인간이 되는 것보다 잃어버린 꿈과 맞닥뜨려야 하는 이 장소에서 조금 비참해도 도망치는 게 나아 보였다.

         

학교 일을 때려치운 지 5개월 정도 지났을 때 둘째 아이의 학교에 갈 일이 있었다. ‘교육 공동체 대토론회’라고 해서 큰 강당에서 교사와 학부모, 학생이 모여 학교 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였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득 깨달았다. 내가 교사를 직업으로 가진 사람에 대한 열등감과 부러움이 섞인 미묘한 감정에서 어느 정도는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말이다. 역시 학교를 그만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가장 하이레벨의 테스트가 남았다. 그것은 교사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다. 함께 공부하다가 먼저 시험에 합격한 그들을 만나서 그들이 교사로서 겪는 각종 에피소드를 웃으며(표정은 중요한 테스트 항목이다. 사심 없이 웃는 것이 중요하다) 조언해줄 수 있어야만 최상위 레벨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다.           

음... 이것만은 나에게 시간이 필요하다. 솔직히 아직 자신이 없다. 다른 중독처럼 시험 중독도 장기 프로젝트로 접근해야 하므로 핑계 같지만, 이 테스트는 잠시 미뤄두는 걸로.       

이전 08화 시험 중독 탈출 프로젝트2 -신포도 전략을 써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