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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체리 May 14. 2020

시험 중독 탈출 프로젝트 5
-주인공은 개나 줘버려

                                             

까짓 그 스포트라이트 좀 못받으면 어떤가

 



공무원 시험의 입구를 찾기는 쉬웠다. 합격 수기 몇 편만 읽고 바로 그 다음날 평점이 좋은 학원에 등록하면 된다. 그러나 막상 그만두려고 하자 마치 개미지옥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만두는 방법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시험의 출구는 각자 찾아야 한다.

         

"네가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어?"


간호조무사 학원에 등록한다고 할 때 사람들이 나에게 보인 반응이다. 그 일을 하기에 나의 학벌이 과하다는 것이다. 직업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솔직하게 말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그러나 정작 내가 걱정했던 것은 나의 체력이었다. 육체노동을 한 번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노량진에서 나이가 제법 있어 뵈는 수험생들은 보통 직업인에서 수험생으로 유턴한 사람들이다. 후배 한 명도 어린이집 교사를 하다가 다시 시험공부를 하고 있다. 고졸의 어린이집 정교사가 명문대 출신인 자신을 부려 먹으면서 희열을 느끼는 것 같아 못해먹겠다고 했다. 

 

"언니도 다시 돌아오게 될 거야."


후배의 말이 현실이 될까 봐 나도 두려웠다. 새로운 직업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시 돌아와 나이 쉰이 넘어서도 시험을 본다고  아픈 엉덩이를 뭉개고  있을까 봐 겁이 났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 나는 이미 과거의 계급장을 일찌감치 떼어 버리기로 결심했다. 나이 마흔에 아직도 스무 살의 대학 입학성적으로만 자신을 말하는 것은 조금 민망한 일이다. 고졸 조무사가 나를 혹독히 가르치면서 희열을 느끼든 어쨌건 간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군대에는 안 다녀왔지만 짬밥이란 게 얼마나 무서운 지는 알만한 나이는 되었다.

          

직업을 연극에 비유한다면 나는 그동안 교사가 단연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스포트라이트는 오직 교사만을 비추고 있었다. 나머지 직업들은 암흑으로 처리되어 있었다. 오랜 공부로 인해 나는 직업에 대한 배타적인 사고를 가지게 되었고 그래서 가르치는 일 이외의 다른 일을 해볼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간호조무사는 아예 내 시선 밖에 있었다. 조연이 아니라 엑스트라급도 안 되는 배역이었다. 겨우 그 일 하려고 그렇게 오래 공부했냐는 사람들의 말이 귀에 들리는 것 같아 결정을 내리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나는 중독에서 벗어나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던 해야만 했다. 생계를 위한 직업을 갖는 것이 시험공부만 하면서 뜬구름 잡는 삶보다 가치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확인시켜야 했다. 적성이고 학벌이고 나발이고는 나중 문제였다. 고학력이 필요하지 않은 직업을 갖게 되면 자괴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내가 잘 정착한다면 세상을 더욱 겸손하게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조연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무대 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는 분명히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막상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오히려 그전까지 주인공이 되려고 아등바등거렸던 시간이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시선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당당하게 간호학원에 입학원서를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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