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나도 이 말이 가장 듣기 싫었다. 공부가 가장 쉽다니.. 이 정말 얼마나 재수 없는 말인가! (단지 책 제목만 두고 본다면 말이다) 시험을 준비할 때는 이 말을 듣고 좌절했다. 그 쉽다는 공부를 하고 있으면서 이렇게 힘든 나는 무엇? 그리고 쉽다는 공부에서 자꾸 낙오하는 나는 벌레만큼 하찮은 인간인가?
시험 중독에서 탈출할 첫 비상구는 요양병원이었다. 그곳은 간호조무사로서 나의 첫 실습지였다. 남들은 왜 일부러 그렇게 힘든 곳을 실습지로 선택하냐고 말렸지만, 나는 굳이 그곳을 고집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나 스스로를 시험하고 싶었다. 내가 정말 시험 중독에서 벗어나, 세상을 향해 나갈 준비가 되었는지를 말이다. 일부러 나를 벼랑으로 밀어본 것이다. 벼랑에서 떨어져 피투성이가 되어도 다시 기어서 날아오른다면, 그러니까 내가 그 힘들다는 요양병원에서 잘 적응하여 버틴다면 나는 합격이다!
그러나 실습 일주일 만에 나는 나의 생각이 오만이며 허세라는 것을 깨달았다.
요양병원은 상상한 그 이상이었다. 환자들의 욕창과 기저귀 냄새에 둘러싸여 하루에 몇 백번씩 혈압을 재야 했다. 쓰레기를 버리러 병원 옥상에 터덜터덜 올라갔을 때는 늦여름 햇빛이 눈에 부시다 못해 눈물이 쏟아졌다. 격무에 시달리다 집으로 돌아와 누우면 몸이 이불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게다가 눈치 없게 내 손과 두뇌는 따로 놀고 있었다. 일 년 전만 해도 수험서를 펴고 파이널 마무리를 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정보를 쏟아부으며 책상 앞에서 머리만 굴리던 나였다. 손으로 하는 일이란 모의고사 답안 쓰기가 전부였다.
새로운 기술을 배워야 하는 이 중요한 시점에 나의 손은 갑자기 자기에게 쏟아진 관심이 부담스러운 듯 두뇌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움직였다. 주삿바늘을 뺄 때 알코올 솜을 빨리 대주지 못하는 내 손 때문에 환자의 팔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시험에 떨어지면 간호조무사나 해야겠다'
같이 시험을 준비하던 동생들에게 무심코 내뱉었던 말이 부끄러웠다.
'간호조무사나' 라니. 얼마나 경솔하고 건방진 말인가. 그렇게 만만한 간호조무사의 일을 지금 나는 이렇게 버벅거리고 있단 말인가. 모든 종류의 노동이 숙련되기까지는 인내와 반복적 연습이 필요하다. 나는 이 문장의 의미를 마흔이 넘어서야 몸으로 깨닫게 되었다.
내가 그동안 남편에게, 친구들에게 생각 없이 던졌던 말들,
'정 안되면 마을버스 운전기사라도 해'
'은퇴하면 아파트 경비나 하지 뭐'
'우리 나이에는 마트 캐셔 밖에 할 게 없어'
이런 말들은 그 직업의 업무가 숙련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과 땀을 흘렸는지를 알지 못한, 나이는 많으나 철부지로 살아왔던 나의 얄팍한 인생을 보여주는 말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공부가 가장 쉬웠다. 그랬기 때문에 자꾸 되풀이하여 공부를 해왔던 것이다. 공부가 정말 어려웠다면 이렇게 오래 공부를 잡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에 나가서 자존심을 버리고 처절히 깨지는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아서 책상 앞에 앉아 있는 편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실수로 병원 서류를 잃어버려서 조카보다 어린 조무사에게 깨지고, 소독된 용기를 손으로 만졌다가 선배 조무사의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질책을 피해 멍하니 병원 비상구 계단에 앉아 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공부에 매달렸는지도 모른다.
비정규직의 설움 따위는 비교도 되지 않는 거친 세상을 겪으면서 나는 겸손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