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 환자들은 보통 장기 입원 중이다. 그래서 그들은 정신적으로 몹시 외롭고 지쳐 있다. 이해는 하지만, 그들이 부적절한 언어와 행위를 보여줄 때 자연스럽게 대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리 와 봐'라고 해놓고 갑자기 자기 성기를 보여주거나 혈압을 잴 때마다 원색적인 욕설을 퍼붓는 환자들을 대할 때마다 실습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힘든 문제는 병원의 업무 구조이다.
요양병원의 직원들에게는 화장실 갈 틈도 없는 살인적인 업무 폭탄이 쏟아진다. 그러다 보니 누구나 하기 싫어하는 일- 예를 들면 오염물 처리나, 피 묻은 의료기구 세척, 전염병 환자 관리-등을 저 경력 조무사가 전담하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고경력자가 저 경력자에게 일을 맡기면, 저경력자는 힘없는 실습생인 나에게 일을 미루는 먹이 사슬식 업무 구조가 반복되기 시작했다.
"학생"
뒤돌아보면 어김없이 원장님께 커피를 타주라고 하거나 진상 환자의 물을 떠 오라거나 혹은 퇴원 환자의 균이 잔뜩 묻은 용품을 소독하라는 업무 지시가 떨어졌다. 나중엔 부르는 소리만 들려도 등골이 서늘해졌다. 다들 너무 힘드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이해도 되었다. 그러나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구성원 간의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업무 분담은 폭력적이야.
라고 머릿속으로 생각은 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부당한 제도라고 하더라도 바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성급하기 때문이다. 이등병이 선임병의 군화를 닦는 것이 불만이라 해도 냉큼 구둣솔을 집어던질 수는 없다.
그 대신 나는 절대 그런 병장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내가 만일 후임 직원에게 불합리하게 일을 미루게 되는 때가 온다면 그때는 그 일을 그만두어야 할 적기라는 뜻이다.
성찰과 사고의 과정 없이 직장을 다니게 되면 안나 아렌트의 말대로 ‘악의 평범성’의 얼굴을 내가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가 친구한테 욕을 얻어먹었다. 니 말이 간지야 난다마는 먹고사는 것은 인문학이나 철학의 문제와는 다르다는 것이므로 일단 겪어보고 나서 말하라는 것이다.
친구의 말이 맞다. 먹고살다 보면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누구나 초심과는 다르게 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여튼 중요한 것은 나는 지금 일단 이등병이라는 것이다.
내가 어떤 병장이 될까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이등병의 시간을 버텨야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괴롭고 힘들어도 일단 견딜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