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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아 페레즈>, 완벽히 독립된 2막은 없지만

자크 오디아르, <에밀리아 페레즈(2024)> 리뷰

by 새시

원하는 인생을 완벽히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아마 대부분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모두 이룬 채 살아가지는 못 할 것이다. 완벽하게 원하는 삶을 위해서는 희생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이들은 원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죄를 지으며 살아가기도 한다. 본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는 여성으로서의 삶을 원하였지만 남성으로 태어나 살아남기 위해 거칠게 살아갔던 마약 카르텔의 수장이 자신이 원하던 대로 여성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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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막은 1막을 벗어날 수 없다.


<에밀리아 페레즈>의 주인공들은 모두 인생 2막을 꿈꾸는 존재이다. 주인공인 ‘후안 마니타스 델 몬테(카를라 소피아 가스콘 분)’는 마약 카르텔의 수장이지만, 지금의 마초적인 삶이 아닌 어린 시절부터 여성으로서의 삶을 꿈꿔왔던 존재이다. ‘리타 카스트로(조 샐다나 분)’은 정의 대신 이익을 좇을 수밖에 없는 말단 변호사이지만, 이러한 상황을 혐오하고 정의로운 일을 하기를 항상 바라는 존재이다. ‘마니타스’의 아내 ‘제시 델 몬테’는 남편을 사랑했었지만 강압적으로 변해버린 그의 모습에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존재이다. 그들의 바람은 ‘마니타스’의 성전환 수술로 인해 이루어지게 된다. ‘마니타스’는 ‘에밀리아 페레즈’라는 여성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되고, ‘리타’는 그를 여자로 만들어준 대가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도 될 만큼의 돈을 벌었으며, ‘제시 델 몬테’는 남편의 죽음으로 부분적으로 자유로워진다.


하나, 그들의 2막은 1막과 독립적이지 않다. '에밀리아'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떨쳐내지 못하고 '리타'에게 그들을 멕시코로 다시 데려와 달라고 요청한다. ‘리타’는 1막과 2막에서의 ‘에밀리아’의 삶을 연결하는 연결고리 같은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이후 그들은 관계를 이어가는데, 그 과정에서 우연히 실종된 자식을 찾는 어머니를 만나게 된 '에밀리아'는 전직 카르텔 수장으로서의 직감으로 청년이 마약 카르텔의 희생자라는 것을 간파한다. 자신의 죄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해 그는 자신의 정보망을 활용하여 희생당한 청년의 시신을 비롯한 많은 시신들을 수습해서 가족들에게 전달하고, 이러한 선행에서 얻은 감정에 감화되게 된다. 그는 이후 카르텔에게 희생된 이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협회를 설립하게 된다. 독립되지는 못 했지만, 1막에서의 삶과는 대조된 2막에서의 삶이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1막의 흔적은 내내 2막에 영향을 끼친다. 자신의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는 ‘제시’는 자신이 도피하였을 때 기다려주었던 남성과 결혼을 하고자 하지만, 자식들을 데려간다는 말에 화가 난 ‘에밀리아’로 인해 방해를 받게 된다. ‘에밀리아’는 2막에서의 모습이 아닌, 1막에서의 마약 카르텔 수장의 방식으로 이를 방해하는데, 남성에게 폭력을 통해 위해를 가해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에 분노한 ‘제시’는 ‘에밀리아’를 납치해 그의 돈을 받아 도망가려고 인질극을 벌이게 된다. 그들이 가진 1막의 흔적이 뒤얽히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에밀리아’가 자신의 남편임을 알고 그들이 서로 사랑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지만, 이로 인해 발생한 사고로 그들은 생의 마지막을 맞게 된다. 그렇게 그들의 2막은 1막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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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으로 인한 악행은 용서받을 수 있는가.


작품의 주인공 '에밀리아'는 작품의 1막에서 크나큰 악행을 저지르며 살아왔다. 마약 카르텔의 수장이었기 때문이다. '에밀리아', 아니 '마니타스'는 이를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다. 가난하고 거친 환경에서 어린 시절은 보낸 그에게 이는 생존을 위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에밀리아'로 이를 속죄할 기회를 얻게 된다. 마약 카르텔로 인해 희생된 이들의 시신을 수습해 가족에게 돌려보내는 기관을 자비로 설립하여 운영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이 하나 주어진다. 환경으로 인해 저지를 악행들을 이를 속죄할 환경이 될 때 속죄하면 용서받을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다. '에밀리아'는 악행으로 번 돈을 활용해 이러한 선행에 최선을 다 했다. 선행을 베풀 수 있는 위치가 되자 최선을 다 한 것이다. 영화는 이러한 질문에 부정적인 대답을 말하지 않는다. 비록 이전의 삶의 죄로 인해 단죄받았지만, 장례식에서 추앙받는 그의 모습을 통해 그의 속죄가 무의미하지 않음을 말한다. 이는 더 나아가, 1막과 완벽하게 독립적이지 않은 2막이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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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장하게 활용된 뮤지컬적 요소.


같이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 주요 부문에 오른 (표면적으로는) 밝은 분위기의 뮤지컬 영화 <위키드>와 다르게, <에밀리아 페레즈>는 시종일관 비장한 분위기를 고수한다. 이는 현실을 표현하는 장면과 뮤지컬을 표현하는 장면 사이의 경계가 모호한 점에서 더욱 강화되는데, 작품 내내 깔린 비장한 분위기가 뮤지컬이라는 감정적인 매체를 통해 강해지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동시에, 영화 전체적으로 깔려 있는 어두운 색감은 이러한 분위기를 더욱 가중시킨다. 이는 작품에서 가장 큰 출연 비중을 가지고 있는 ‘리타’가 뮤지컬 스코어의 많은 부분을 가지고 있는 점에서도 느낄 수 있는데, 작품의 1막과 2막을 연결해 주는 존재이자 ‘에밀리아’의 삶을 지켜보는 화자이기도 한 그의 시선으로 ‘에밀리아’의 강렬한 삶을 잘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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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아 페레즈>는 성전환이라는 소재를 활용하여 새로운 인생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논하는 작품이다. 비장한 분위기가 강한 가운데, 이를 자연스럽게 반영한 뮤지컬을 통해 작품 특유의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그 속에서 바라보는 ‘에밀리아’의 삶을 통해 작품은 관객에게 삶 속에서 행하는 죄와 이에 대한 속죄에 대해 생각하도록 하고,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삶의 의미에 대해 성찰하도록 한다.




* 제77회 칸 여우주연상(카를라 소피아 가스콘, 조 샐다나, 셀레나 고메즈, 아드리안나 파즈 공동 수상) 수상

*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카를라 소피아 가스콘), 여우조연상(조 샐다나), 각색상, 국제영화상, 촬영상, 편집상, 음악상, 주제가상(El Mal 및 Mi Camino), 음향상, 분장상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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