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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별에 필요한>, 공간을 넘어 전달되는 간절한 사랑

한지원 <이 별에 필요한(2025)> 리뷰

by 새시

0. 우주인 ‘난영’과 음악인의 꿈을 접은 ‘제이’가 우연하게 만나 사랑의 감정을 나누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 <이 별에 필요한>은 평균 2억 km가 넘는 지구와 화성 간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두 연인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각본의 세밀함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본 작품은 이렇게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굉장한 비주얼과 흡입력 있는 놀라운 연출을 통해 인상적으로 전달하는 수작이다.


* 아래부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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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사랑’에 대한 표현이다. 인생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며,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는 ‘난영(김태리 분)’과 ‘제이(홍경 분)’은 길거리에서 우연하게 만나고, ‘난영’의 어머니가 남긴 유산인 턴테이블이라는 공통된 관심사로 인해 가까워지게 된다. 그들은 여러 일들을 통해 점점 가까워지고, ‘세운상가’에서의 낭만적인 밤과 함께 연인이 된다. 2050년대라는 근미래에 맞춰 변주한 ‘세운상가’라는 상징적 장소의 낭만과 함께 가까워지는 그들의 마음을 그려낸 점은 굉장히 낭만적으로 다가오는데, 이를 수려하게 그려낸 비주얼과 마음이 닿아가는 것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닫는 엘리베이터에서의 ‘난영’의 모습이 이를 더욱 낭만적으로 느껴지게 한다.


2. 작품은 그들의 사랑이 그들의 꿈에 미치는 변화를 그려낸다. ‘제이’는 모종의 이유로 음악이라는 자신의 꿈을 포기한 상태이다. 아쉽지만 그러한 삶에 익숙해진 채 살아가던 그에게 나타난 ‘난영’은, 자신도 잊고 있던 자신의 꿈을 상기시켜 주었으며 그를 응원해 준다. ‘난영’이 좋아하던 곡을 ‘제이’에게 처음으로 들려주었을 때, 그 곡이 ‘제이’가 처음으로 인터넷에 업로드했던 곡이라는 것을 그려낸 장면 이후 그려지는 ‘제이’의 장면에서 달에 비친 그의 그림자가 거대하게 그려지는 것도 이러한 사랑으로 인해 커진 자신감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렇듯, ‘제이’에게 ‘난영’은 자신도 포기했던 자신의 꿈을 응원해 주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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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난영’에게 ‘제이’는 그의 대사처럼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나타난 오아시스’ 같은 존재이다. 화성이라는 꿈만을 보며 앞으로 나아갔던 그에게 우연하게 나타난 ‘제이’는 지쳐있던 ‘난영’에게 새로운 연료를 공급해 주는 존재가 되었고, 다시금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해준 존재였기 때문이다. 하나 ‘난영’은 꿈보다 ‘제이’를 앞에 둘 수는 없는 사람이었고, 이로 인해 ‘제이’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그렇지만 ‘제이’는 그럼에도 ‘난영’을 떠나지 않았고, 자신을 어떠한 상황에서도 응원해 주고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는 후반부 ‘난영’이 죽음 직전에 놓였을 때도 삶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도록 해준다. ‘난영’에게 ‘제이’는 자신을 언제까지라도 기다려주는, 그렇기에 돌아가야 하는 집과 같은 존재이다.


4.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가 떠오르기도 하는 후반부는 그들의 사랑으로 쌓아 올린 감정이 폭발하는 부분이다. 사고로 인해 죽음의 문턱에 이른 ‘난영’은 ‘제이’를 떠올린다. 화성으로 가는 것을 싫어했지만 그럼에도 ‘난영’ 옆을 지킨 ‘제이’를 떠올리며 죽음의 위기를 겪을 때, ‘제이’는 ‘난영’의 응원을 통해 용기를 얻고 자신의 노래를 밴드와 함께 무대에 올리게 된다.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난영’이 좋아하는 곡을 부르기로 결심한 ‘제이’는 밴드에게 이러한 결심을 말하고, 그는 ‘난영’을 그리며 무대에 오른다. ‘난영’이 죽음의 위기를 겪고 있는 그때, ‘제이’는 무대에서 기타 줄이 끊어지는 등 무엇인가 불길함을 느낀다. 연인이 살아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마음과 살아 돌아가 연인을 만나기를 기원하는 마음의 합은 평균 거리가 2억 km가 넘는 공간을 넘어서 공명한다. 작품은 이 과정의 간절함을 굉장한 비주얼과 연출로 그려내는데, ‘턴테이블’을 통해 홀로 남은 ‘난영’에게 ‘제이’의 음악이 전달되는 것 같은 장면과, 이어서 ‘난영’이 여러 시간 속에서 ‘제이’에게 달려가는 장면을 통해 그들의 강렬한 감정을 폭발적으로 전달한다. 또한, 지구의 ‘제이’가 화성에 있는 ‘난영’에게 ‘난영’의 아버지가 화성으로 메시지를 송신하던 통신 장비를 통해 말을 전하는 데 성공한 부분도 상당히 감동적이었는데, 아내를 잃은 ‘난영’의 아버지가 평생 해왔던 사랑이 헛된 사랑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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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 별에 필요한>에서 또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2050년 대의 ‘서울’에 대한 묘사이다. 마치 <블레이드 러너>와 <블레이드 러너 2049>가 생각나는 비주얼의 ‘서울’은, 이들과는 다르게 상당히 밝은 이미지로 그려낸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가진 매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미래 도시의 이미지를 덧붙여 매력 있는 하나의 도시를 만들어낸 것이다. 특히 그들의 사랑이 시작되고 깊어지는 ‘세운상가’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인데, 미래 도시 서울에서 피어나는 사랑이지만 마치 현대의 서울에서도 있을 법하게 묘사한 점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6. 그럼에도, 각본에 대한 아쉬움은 떨쳐버릴 수가 없다. 작품에서 일어나는 주요 사건들이 대부분 우연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만남이야 우연한 것은 당연하지만, ‘제이’가 잠깐 올렸던 곡을 ‘난영’이 가장 좋아했었다는 곡이라는 설정 등 극의 진행에 우연이 과하게 개입하는 느낌이 내내 들었다. 수미상관을 의도한 결말 부분도 꽤나 아쉬웠는데, 그렇게 절절한 사랑을 해놓고서는 공항이나 착륙 장소가 아닌 서울의 길거리에서 마치 우연히 만나는 것처럼 그려낸 부분이 굉장히 아쉽게 느껴졌다. 또한,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이 별에 필요한’이라는 제목에서 ‘이별’을 담당하는 ‘난영’과 그의 어머니에 대한 서사가 너무 비어있어 제목이 말하고자 하는 바도 와닿지 않는다는 점도 아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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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물론, 그럼에도 <이 별에 필요한>은 상당히 인상적인 작품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굉장한 비주얼과, ‘사랑’이라는 감정을 관객들에게 폭발적으로 전달하는 연출은 작품이 매력적이라고 말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한국 애니메이션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작품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작품 자체만으로도 큰 매력을 가지는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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