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모습을 사랑하는 것.
코끝을 저미고 눈가를 순식간에 채워 넘쳐버릴 때,
스스로 갈무리할 틈조차 허락하지 않은 채—
타인의 눈동자에까지 닿고야 마는 그 무방비함도,
이불 안으로 숨어 숨을 참으며 삼키려 애쓰던 그 지난한 시간들까지도
사랑하기로 하는 것.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모든 살아있는 것을 사랑하려 하지 않아야지
살아있는 것들은 나를 슬프게만 하지만
죽어가는 것들은 가장 처절한 슬픈 사랑까지 기껍게 하니
억눌린 슬픔을 한없이 토해내고 뱉어내기 급했던 불규칙한 숨에—
그 숨에 스스로 얽매여 소리가 되지 못한 채 허공에 흩어지던 그 젖은 소리를
말로 정리하고 누군가에게 그럴듯한 이야기로 전달하는 과정에 흐르지 못하고 버려진
어딘가로 분류되지도 못하는 이리저리 얽힌 감정에 스스로 조여 고통이 올라 어찌할 바 모르던 날들을
나만이 느낄 수 있었고, 그래서 홀로 처절히 바닥을 기며 울었던 그 질척했던 밤들까지도
나는 이제 사랑할 수 있다.
나는 잘 울지 못했다. 나의 혼란과 나약, 권태를 세상에 들키는 것 같았다.
여린 살뿐임을 숨기고 남들이 파도에 뛰어들 때 함께 뛰어든 채 아무도 모르게 살갗이 깎여 나가고 찢기다 서서히 바다에 녹아 버렸던 그 연약함이 나에게 있음을 철저히 숨기고자 했다. 하지만 눈물은 모든 감정의 높낮이가 사라진 찰나의 틈에 새어 들었다. 창가로 쨍하게 스며드는 환한 햇살을 봐도, 먹구름 밑으로 쏟아지는 세찬 폭우를 봐도 멀쩡히 굴다 아무 낌새도 없이 잔잔한 하루에 느닷없이 쏟아졌고 여전히 이유는 알아내지 못했다.
잔잔한 표면 아래 어딘가가 이미 넘쳐 있었던 걸까.
그 고요함은 한계라는 다른 이름을 몰래 깊은 아래에 숨겨두고 찾아들었나.
끔찍했던 건 그때 그 원인 모를 감정에서 허덕이던 나의 초라한 순간은 늘 내 동공에 먼저 닿았다. 그 장면은 언제나 비참함이 벽면 가득 스크린처럼 상영되어 나를 짓누르고 유일하게 나를 비추는 거울조차 거부한다는 듯이 내 모든 주름을 찢어놓은 채 스스로를 외면하게 만들었다. 온 얼굴이 웃음과 반대로 중력에 순응하듯 휘어지며 온몸에 열이 피어나며 순식간에 내 머릿속에 가시 돋친 선인장이 꽉 들어 차는 듯 아프게 했다. 그 선인장 가시들에 찔려 피가 나는 것처럼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어쩌면 눈물과 피는 같은 것일까.
고통과 함께 흐르는 것들.
내 눈에서 흐른 것은 투명했지만 부서진 감정의 핏빛을 완전히 숨기지 못했기에 그조차도 어떤 것이었다고 제대로 말할 수 없다.
울지 않으니 썩어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지어지지 못한 표정으로 인해 내 얼굴의 주름 사이사이에 물기가 고이고 곰팡이가 생겼다. 눈을 감으면 슬픔이 썩어 만든 우울에서 곰팡이 냄새가 났고, 그걸 씻어내어 줘야 한다는 걸 알지만 몰랐다.
내 삶은 알지만 모르는,
그 애매한 진실 위에 겨우 지탱되고 있었으니.
안다고 하면 틀리고, 모른다고 하면 포기가 되는 모든 패배의 형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무 답도 내지 않고 제일 쉬운 생존 방식으로 잠을 택했다. 잠에 들면 눈물도, 냄새도, 감정도, 생각도 모두 닫혔다.
그렇게 점점 온몸에 썩은 감정이 번져갈 무렵 나는 울어보기로 했다. 울어보기로 해서 울게 되는 건 아니었다. 울음이 차고 흐를 때, 멎으려는 노력을 멈추는 것을 했다. 그때 처음 느낀 건, 순환이었다. 막혀있던 어딘가의 흐름. 그 흐름은 내 몸을 움직이게 했고 내 표정을 만들었으며 내 삶을 작동시켰다. 그 작동의 느낌은 타고 흘러 심장 근처를 어루만졌고 나는 그제야 살아있음을 느낀다. 내가 삶을 사랑하기로 결심할 수 있었던, 순환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통한 삶의 자각은 더 이상 고일 수 없다는 듯이 감정이 머물지 않고 통과하도록 내 안에 잇따른 문을 열었고 나는 울음을 품은 채 살아 움직이는 것을 배웠다. 그 껴안음은 나를 확장했고,
내 안의 어린 감정은 마침내 자라는 법을 배웠다.
나는 더 이상 '울지 마'라는 말을 건네지 않기로 했다.
슬픔을 달래는 의미의 '위로'는 어느새 나에게 슬픔을 쏟아내는 과정을 함께 견뎌주는 것이 되었다. 슬픔을 달랜다는 명목 아래 슬픔을 치워버리게 하는 억압이 언젠가부터 위로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은 이질감이 들었다. 슬픔을 억누르고 고요히 혼자 문드러지는 그 시간을 견뎌봤기에 그 점이 문득 오류로 나타난 걸까.
진짜 울지 못할 때의 고통을 선연하게 느꼈던 사람은 이제 상대의 슬픔까지 사랑할 줄 알게 되어버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