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부터 ‘이해’라는 단어가 어려워졌다. 이해는 너무 빠르다. 고통의 안전지대에 선 사람이 툭 던질 수 있는 무례한 돌멩이 같은. 그 돌멩이가 나갈 때는 깃털처럼 가볍다가도 어느새 빠른 속도로 돌멩이가 되고, 그것이 어디에 떨어질지,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길지 던진 사람은 알 수 없다. 계속해서 무서워지는 나를 두려워하며 견뎌내야 하는 게 삶인가 보다. 그 견딤의 시간은 꽤 외로워서 타인과의 연결을 갈망하게 했다. 그 연결을 나는 이해없이 해보려 한다. 우선 나는 상대의 고통을 마주 볼 수 있는 자리로 옮겨 앉았다. 바깥이 아닌 내부로, 그리고 그의 바로 맞은편으로. 이 이야기는 목격의 자리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사실 잘 모르겠다. 말이 없는 사람에 대해 아는 척하는 건 닫힌 문 너머의 방을 묘사하는 느낌이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그는 내 앞에서 늘 말수가 적었고 내게 보여주지 않는 비밀이 많다는 정도다. 그의 침묵은 공기 위에 얹힌 무게가 되어 우리 사이를 말 대신 채웠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게가 내 어깨와 가슴 위로 내려앉는 듯했다. 정적 속에서는 호흡에 의식이 기운다. 숨을 들이마시는 일이 조금씩 어색해진다.
침묵은 주변의 소음을 날카롭게 만든다. 초침의 마찰음, 쏟아지는 자동차들이 만들어내는 파열음, 생명력을 과시하는 듯한 세상의 소란이 과장되어 귓속에 쏟아져 들어왔다. 그 모든 걸 밀어내고 내 귓가에 가장 크게 퍼지는 것은 그의 숨소리였다. 그가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마다 나는 내 숨을 빼앗긴 사람처럼 호흡이 얕아졌다. 누군가의 호흡이 나의 호흡을 끌고 가고 있다는 생경한 감각 뒤에는 어쩐지 미약한 희열이 따라왔다. 그와 나 사이에 희미하게 연결된 실 한 가닥을 본 기분이었다.
나는 은밀하게 그 착각을 이어갔다. 그 가냘픈 연결을 내색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여전히 침묵이라는 투명한 상자에 갇혀 있었다. 나는 그가 숨을 뱉고 들이마시는 박자를 놓치지 않으려 애쓰며 조심스레 호흡을 포갰다. 적막 속에서 혼자 감행한 비밀스러운 연결이었다. 누군가에게 들켜 이 연결이 착각이 아니라는 걸 확인받고 싶다가도, 들키는 순간 이 가느다란 호흡이 산산이 허공으로 흩어질까 봐 겁이 났다. 확신이 주는 견고함을 탐하기에는, 나는 부정 앞에 산산조각 날 소멸의 서늘함을 너무나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말이 숨어버린 공간에서 손은 말을 대신한다. 그의 손가락 마디에 미약하게 힘이 들어갔다 풀린다. 허공을 붙잡듯 손가락을 오므리고, 손톱으로 제 살을 짓누른다. 살갗 위에 하얀 자국이 돋아났다가 서서히 지워진다. 지워진 자리에 피가 다시 스민다.
그는 알까.
그의 손이 나에게 보내는 이 미세하고 집요한 고발들을.
나는 그 고발을 기록하려 손을 움직였다. 내 손톱이 살갗을 파고든다. 그의 손에 생겼던 만큼의 하얀 자국이 이젠 내 손에 내려앉는다. 나는 손을 금방 펴지 않았다. 그의 고통이 내 몸에 옮겨 온 순간의 크기를 잃고 싶지 않았다. 이 통증이 끝나고 피부가 원래대로 돌아가며 피가 다시 순환하기 시작하면, 그와 연결되었던 자국들이 이젠 내 몸에 닿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고통을 쥐었다 펴며 기억하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 고통을 놓치는 순간 영원히 그의 바깥으로 밀려날 것이다.
나는 계속 목격하고 싶었다.
이해하지 않고도 그와 연결되고 싶었다.
고통을 공유받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어떤 질문도 꺼낼 수 없었다. 입술 끝까지 올라온 말들은 혀끝에서 식어 다시 목구멍 안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한 번이라도 소리를 얹는 순간, 우리 사이의 공기가 다른 결로 바뀌어 버릴까 두려웠다. 질문은 노골적인 채근 같았고, 위로는 내가 엿본 당신의 것들이 감당할 만한 수준이었다는 기만적 신호가 될까 두려웠다. 설명은 그의 비밀을 세상 위에 올리는 구경거리처럼 만들까 꺼림칙했다. 침묵을 만드는 사람이 둘이 되었다.
나는 손을 더 세게 쥐었다. 말 대신 몸으로 그를 앓아내려 했다. 연결되고 싶었던 내 욕심의 대가를 오직 통증으로 치르고 싶었다. 이 정적 속에서 우리만 아는 미세한 교신이 세상의 소음과 뒤섞여 흐려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창밖에는 저녁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빛이 물러난 자리에 어둠이 차오르자 정적은 더욱 아득해졌다. 그가 처음으로 몸을 움직였다. 살을 파고들던 그의 손가락이 천천히 풀렸다. 마디마다 맺혀 있던 하얀 긴장이 느슨해지는 것을 보며, 나 역시 쥐고 있던 손을 천천히 폈다. 손등에는 여전히 그의 고통을 흉내 낸 깊은 손톱자국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아릿한 통증이 밀려왔고, 나는 그 감각에 집중했다. 그 감각이 내가 그의 곁에 머물렀음을 가장 먼저 증명하는 것 같았다.
그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그 눈 속에는 여전히 말로 다 할 수 없는 허기가 고여 있었지만, 아까처럼 위태롭게 흔들리지는 않았다. 그는 잠시 내 손등에 남은 붉은 자국을 응시했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술이 달싹였으나, 이내 다시 닫혔다. 고요한 응시는 부드럽게 내 자국을 훑었다. 나는 끝내 위로를 건네지 못했는데, 그는 위로를 받은 사람처럼 굴었다. 그는 더 이상 손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손에 있던 자국은 사라졌고, 눈에 있던 위태로움도 잠잠해졌으며, 들썩이던 호흡도 가라앉았다. 나는 이제 그를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가야겠어.”
내가 먼저 침묵을 깼다. 괜찮냐는 말도, 다음에 보자라는 약속도 하지 않았다. 그런 말들은 방금까지 우리가 지켜온 이 공기의 무게를 단숨에 흩뜨릴 것 같았다. 그는 대답 대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짧은 움직임 속에 인사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나직한 끄덕임 한 번에 코끝과 눈가에 열기가 모여든다. 그 열기를 들키지 않으려 빠르게 그의 바깥으로 물러섰다. 그는 계속 한 자리에 있었는데 나 혼자서 그의 내부로, 외부로 부산스럽게 자리를 옮겨 앉았다. 다리에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는 모르는 나의 고통이 시작되었다.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의 응시는 내 고통을 연결받기 위한 신호였다는 걸. 그는 손으로 자국을 만들며 나에게 당신의 비밀을 알려주었지만, 나는 근육통 같은 드러나지 않는 고통을 혼자 간직했다. 나는 연결되고 싶었지만, 발신하는 법을 몰랐다. 그가 호흡하는 순간, 내 호흡을 얕게 했다. 그가 움직임을 멈추는 순간, 나는 일어났다. 그 모든 조용한 견딤이 그에게는 비밀이 되었다. 그가 만든 침묵에 동조하며 연결을 느꼈는데, 혹시 그 침묵이 나를 듣고 싶었다는 그의 물음일까 겁이 났다. 외로움을 견디려 시작한 연결의 자리에, 내가 건네주고 온 것도 외로움이었다.
문을 열고 나오자 바깥의 차가운 공기가 뺨을 스쳤다. 문을 닫는 순간, 안에서의 정적과 세상의 소음이 날카롭게 분리되었다. 계단을 내려오는 내내 길거리의 경적 소리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귓가로 들이닥쳤다. 조금 전까지 그와 나누었던 그 고요한 결속이 순식간에 아득한 꿈처럼 느껴졌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가로등 불빛 아래 섰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노란 불빛 아래, 내 손등에 새겨진 하얀 손톱자국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자국은 조금씩 흐릿해지고 있었지만, 살갗을 파고들던 그 감각은 이상하리만큼 생생했다. 이 자국이 지워지면 그와 나누었던 숨도 함께 옅어질 것 같아, 나는 한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
주머니 속으로 손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아직 가시지 않은 온기를 한 번 더 쥐고, 고여 있던 숨을 내뱉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와 나누었던 호흡은 입김으로 바뀌어, 세상의 소음 속에서 오래 흩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