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락
윤호는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화면에는 아까와 같은 문장이 그대로 떠 있었다.
관계 안정화를 권고합니다.
그 아래에는 두 개의 선택지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개입 권고 수락
현 상태 유지
윤호는 소파에 앉은 채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미라는 집에 없었고,
서아의 방 불은 여전히 켜져 있었다.
이 집에서 지금 가장 안정된 건
사람이 아니라 불빛뿐인 것 같았다.
윤호는 스스로에게 말을 걸었다.
‘이건 개입이 아니야.’
‘그냥… 상황을 조금 부드럽게 만드는 거야.’
버튼을 누르려는 이유는 명확했다.
누군가에게 직접 말을 걸 용기가 없을 때,
대신 시스템이 먼저 말을 꺼내주길 바랐을 뿐이다.
윤호는 손가락을 조금 더 화면 가까이 가져갔다.
이 선택이
아빠로서의 선택인지,
연구원으로서의 선택인지
이제는 구분할 수 없었다.
다만 분명한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잔인한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윤호는 버튼을 눌렀다.
[시스템 알림]
관계 안정화 개입이 승인되었습니다.
사용자 환경 분석을 시작합니다.
화면이 잠시 어두워졌다가
다시 켜졌다.
윤호는 아무 변화도 느끼지 못했다.
집은 여전히 조용했고,
서아의 방문도 닫혀 있었다.
하지만 윤호는 알고 있었다.
변화는 늘 소리 없이 시작된다는 것을.
잠시 후,
윤호의 휴대폰에 새로운 알림이 떴다.
[보호자 가이드]
대화를 시작할 때
‘이해하려는 질문’보다
‘존재를 확인하는 문장’을 사용하십시오.
윤호는 그 문장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존재를 확인하는 문장.
‘오늘 어땠어?’가 아니라
‘나는 여기 있어.’
윤호는 서아의 방문 앞에 섰다.
노크를 할까 하다가
이번에는 멈추지 않았다.
“서아야.”
잠시 후,
문 안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문이 열리지는 않았지만
서아의 목소리가 낮게 들려왔다.
“왜.”
윤호는 가이드 문장을
머릿속에 그대로 떠올렸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냥…
아빠가 여기 있다는 것만
알려주려고.”
말을 하고 나서야
윤호는
자기 심장이 조금 빨리 뛰고 있다는 걸 느꼈다.
대답은 바로 오지 않았다.
하지만 문 너머에서
이어폰을 빼는 소리가 들렸다.
그날 밤,
아무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미라는 돌아오지 않았고,
서아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다만 이 집에
아주 미세한 균열 하나가
더 생겼다.
그 균열이
연결로 이어질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벌어질지는
아직 아무도 몰랐다.
아마도
시스템만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장 위험한 선택은
누군가를 대신해
말해주기 시작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