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대한민국 초등교사다
아이는
울지 않았다.
다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교실 한가운데
서 있는 아이.
아이 앞에는
낮은 책상이 하나 있었고
그 위에는
구겨진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나는
아이의 얼굴보다
아이 손에 쥔
그 종이를 먼저 보았다.
종이는
엉망으로 구겨져 있었고
연필 자국은
지독하게 진했다.
지운 흔적이 많다는 건
아이 마음속에
이미 여러 번의
폭풍이 지나갔다는 뜻이다.
무언가를 잘 해보려다
포기한 흔적,
틀렸다는 표시 위에
다시 눌러 쓴 마음.
그 종이에는
정답보다
아이의 시간이
더 많이 묻어 있었다.
“괜찮아.”
그 말을 내뱉기까지
나는
잠깐 멈췄다.
‘괜찮다’는 말이
아이를 위한 위로가 아니라
어른인 나를
편하게 만드는 말일 때가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말은
아이를 살펴보는 말 같지만
실은
이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은
어른의 마음일 수도 있었다.
지금 아이에게 필요한 게
성급한 위로인지,
아니면
지독한 기다림인지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교실은 고요했고
의자 끄는 소리도,
종이 넘기는 소리도
그날은
유난히 멀게 느껴졌다.
그 침묵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설명하는 사람도,
아이를 설득하려는 어른도 아니었다.
그저
한 아이의 세계 앞에
서 있는
또 다른 어른
한 명이었을 뿐이다.
아이의 시선은
종이 위에
아주 오래
머물렀다.
나는
그 시선의 속도를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무언가를
하게 만들지 않는 일 또한
어른이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선택이라는 걸
그날
나는 다시 배웠다.
이 자리는
대단한 능력이 있어
지키는 자리가 아니다.
남들보다 잘해서
버티는 자리도 아니다.
다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아야 하는 순간에
아이의 마음을
함부로 침범하지 않기 위해
오늘도
그 침묵 곁에
우두커니
서 있는 사람.
그래서
나는
대한민국 초등교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