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대한민국 초등교사다.> 3화

아이를 설득하지 않기로 한 날

by 신 작가 수달샘

아이를

설득하지 않기로 한 건
포기해서가 아니었다.


설득이
언제나 옳은 선택은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알고도 하지 않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아이의 말은
짧았고
문장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중간에 멈췄고,
고개를 숙였고,
손가락으로
책상 모서리를
계속 문질렀다.


나는
기다렸다.


다음 말이
터져 나올지,
아니면
이대로 끝일지
확신하지 못한 채.


어른은
이런 순간에
서두른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불안함을 견디지 못하고
무언가를
자꾸 채워 넣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괜찮아.”
“말해도 돼.”
“선생님이 도와줄게.”


그 말들이
아이를 위하는 마음이라는 걸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날의 나는
그 다정한 말들이
아이의 속도보다
반 박자쯤

빠르다는 걸
느꼈다.


아이에게는
말해야 할 권리만큼이나
말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는 걸
나는
잊지 않으려 했다.


설득하지 않는다는 건
가르치지 않겠다는
포기가 아니었다.


다만

지금은
이 아이가
속마음을 꺼낼 시간이
아니라는
조심스러운 판단이었다.


아이의 침묵
거절이 아니라
준비 중이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록도 남기지 않았고
어떤 다짐도
강요하지 않았다.


수업은
예정대로 흘러갔고
아이의 하루는
눈에 띄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교실을 나서며
아이는
나를 한 번
보았다.


길지 않은 시선,
특별한 표정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 시선은


‘선생님,
저 아직
여기 있어요’라는


나지막한 신호처럼
느껴졌다.


어른이
말을 줄이면
그만큼
아이의 공간이 생긴다.


그 공간은
곧바로 결과를
만들지는 않지만,
아이를
밖으로 밀어내지도 않는다.


그날 이후로
나는
설득이 필요한 순간과
기다림이 필요한 순간
조금 더
치열하게
구분하려 애쓴다.


모든 아이가
어른의 설명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교실은
매일
증명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대한민국 초등교사다.


아이를
억지로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 앞에서
불필요한 말을
한 줄이라도 더
줄이기 위해


오늘도

이 자리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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