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신호
그날의 변화는
말로 설명하기엔
너무 작았다.
아이의 태도가
달라졌다거나,
표정이
밝아졌다거나
그런 일은 없었다.
교실의 공기는
전날과 다르지 않았고,
아이의 자리도
늘 앉던 그 자리에 있었다.
다만
아이가
연필을 내려놓는 시간이
조금 늦어졌다.
예전에는
문제가 끝나기 전에
연필을 놓곤 했는데,
그날은
한 줄을 더 보고
그 다음 줄까지
시선을 옮겼다.
아주 잠깐,
망설이듯
종이 위에 머문 시선.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 변화였다.
아이
스스로도
느끼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 장면은
기록으로 남기기엔
너무 작았고,
보고서로 쓰기엔
아무 의미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 장면을
지나치지 않았다.
교실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그 안에서
아이들은
각자의 속도로
문제를 넘기고 있었다.
누군가는
이미 답을 적고 있었고,
누군가는
아직 문제를 읽고 있었다.
그 차이는
틀림이 아니라
속도의 차이였다.
그 속에서
아이의 변화는
너무 조용해서
금방
사라질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말을 걸지 않았다.
칭찬도 하지 않았다.
이유를 묻지도 않았다.
어른은
이런 순간에
결과를
붙이고 싶어진다.
“봤지?
할 수 있잖아.”
“조금만 더 하면 돼.”
하지만
그 말들은
아이의 리듬을
다시
어지럽힐 수 있다.
아직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한 변화에
의미를 붙이는 순간,
그 변화는
숙제가 된다.
아이의 변화는
관찰되는 순간보다
지켜지는 순간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그날 이후
아이의 하루는
눈에 띄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시
멈추는 날도 있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도 있었다.
그래도
그날의
한 줄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완전히 멈춘 건 아니다”라는
기억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작은 신호는
확신이 아니라
가능성에
가깝다.
그래서
어른은
더 조심해야 한다.
그 가능성을
증명하라고
재촉하지 않고,
지워지지 않게
그 자리에
두는 일.
그게
내가
그날 한 전부였다.
그래서
나는
대한민국 초등교사다.
아이의 변화보다
아이의 속도를
먼저 지키는 사람으로
오늘도
교실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