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각론, 평면기법이 필요 없는 천상계 책에 대한 공간

의정부미술도서관, 서울책보고, 송파 책박물관

by 최지원

독서에 진심인 사람

발란스 게임이라는 것이 있다.

비슷하거나 극단으로 대조되는 두 가지 항목을 두고 고르는 게임이다.

예를 들면

'평생 샤워 안 하기 vs 평생 양치 안 하기'

같은 농담이다.

친구들끼리 농담으로 발란스 게임을 하다가 갑자기 철학적인 논쟁으로 번질 때가 있어서 재미있다. 비생산적인 것에 서로 열 올리고 이겨보겠다고 자신이 아는 모든 지식을 끌어모으며 세상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할 때의 뜨거움이 좋다.

어느 날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 클릭한 발란스 게임에 나온

'음악 안 듣고 평생 살기 vs 책 안 읽고 평생 살기'가 나와서

이건 당연한 거 아닌가? 하고

'음악 안 듣고 평생 살기' 클릭을 하였는데 나와 같은 선택을 한 사람이 15%밖에 안되었다. 아니... 아무리 심심풀이 게임이지만 책을 포기한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나를 일반화하는 사고는 늘 오류에 빠지지만 이번에도 역시 오류에 빠졌기 때문에 한동안 저 발란스 게임을 주변에 계속 물어보고 다녔다. 내 주변에 '책 따위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지'라고 말해버리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아서 약간의 상실감을 느끼며 나를 일반화했던 것을 수정하는 기간이 필요했다. 나는 음악보다는 책이 좋은 사람이고 누군가 각 잡고 따옴표 치면서 말했던 "음악은 국가가 유일하게 허용한 마약"이라는 문장에 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 책으로 현실을 도피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책에 진심이에요.


독립서점의 큐레이션

직장인 3대 로망

유튜브 떡상, 책방 주인, 카페 사장

책방 주인의 로망을 이루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나는 그 로망을 이룬 사람들의 공간을 방문하는 것을 즐긴다. 그런 공간에는 책에 대한 진심과 열정, 여유에 대한 갈망, 현실세계 와의 분리, 안티(?) 직장을 주제로 하는 큐레이션이 많다.

직장생활 탈출 성공했고 직장 다닐 때만큼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마음이 편하다 라는 말씀들을 주로 하시는 사장님들이 지배하는 이 공간들은 크고 작은 영감을 주고 새로운 책을 발견하게 하는 방문의 재미가 있지만 대부분 작은 공간이 책으로 가득 차 있는 형태라 오래 머물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작은 소리 라도 대화를 하기엔 어려운 공간이다. 독립서점 에디션이나 굿즈를 사서 빨리 나와서 사장님 혼자 조용한 시간을 보내시게 해 드려야 할 것 같은 괜한 느낌이 드는 것, 그것도 나만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겠지.


그놈의 츠타야

츠타야 t-site 없는 동안 뭘로 레퍼런스 삼아서 인테리어 설계했나 싶었다.

한동안 상업공간, 업무공간, 공용공간(복도, 로비 등) 인테리어 공간을 계획하는 데 있어서 주요 디자인 도구로 '도서관'을 키워드 삼아서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이 나는 너무 지겨웠다. 오피스 로비, 라운지 등의 디자인 옵션 중 공간을 책으로 가득 채워 우리는 이런 지식과 아카이빙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이미지는 필수적으로 등장하곤 했다. 나도 이런류의 공간기획을 최근 3-4년간 거의 모든 프로젝트에서 한 것 같다.

책을 맹렬하게 좋아해서가 아니라 책에 둘러싸인 나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고 그런 공간을 선망하는 트렌드는 츠타야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망치를 든 사람은 튀어나온 못만 보인다 처럼 내 눈에 자꾸 '엄마야. 또 츠타야네?' 획일화되어 보이는 것일 수도 있고.


책에 진심인 공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책에 진심인 공간을 알아본다. 나는 이런 장소 들을 영원의 공간이라고 이름을 붙인다. 아. 나 여기 영원히 있고 싶어- 라는 말이 나오는 공간 이기 때문

책을 읽지 않고 서가 앞에 서서 책등의 제목만 구경하는 것으로도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그런공간들을 알고있는데 해외여행과 여러 명이 어울려 노는 것을 대체할 (여행과 유흥 몸부림 치료제) 최근 즐겨 방문하게 된 3개의 공간들을 소개한다.


#의정부미술도서관

나는 의정부미술도서관에 가서 질투심에 사로잡혔다. 지금도 의정부 미술 도서관 반경 500미터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질투하고 있다. 그리고 코앞에 살면서 아직 안 가본 사람들을 만나면 질투심에 손을 바들바들 떨 수도 있다.

의정부미술도서관의 대공간의 회오리진법

이렇게까지..?라는 말을 안 할 수 없는 공간이다. 3개 층높이 오픈공간에 중심에 원형 테이블을 중심으로 벤치와 해외 미술 전문서적들이 회오리 모양으로 진법(?)을 만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의정부미술도서관, 출입시스템 및 도서 반출입시스템

건축 각론 수업에서 도서관 평면의 종류는 사서의 위치와 열람석, 서고의 배치에 따라 개가식, 반개가식, 폐가식 뭐 이런 카테고리들이 있었다. 나 때는 그렇게 배웠다.. 그렇게 배워서 건축기사나 건축사 예비 시험 볼 때도 유효했었는데 이제는 별도의 사서 위치나 서가의 구별은 필요 없다. 체온 측정하고 들어가서 키오스크로 알아서 대출하고 반납하는 시스템으로 요새의 도서관들은 다 바뀌니 건축 각론의 도서관 평면 방식은 무의미해졌고 사람들이 머물고 싶어 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제일 중요해졌다.

의정부미술도서관

그래서 이렇게 책에 대한 진심만 가득한 천상계 도서관이 나왔구나.. 감탄하고 3층에 위치한 카페에서 커피 마시면서 책도 읽고 아이패드에 쓰고 싶은 글도 끄적이다가 집에 돌아온다.


#송파책박물관

나는 또 질투심에 사로잡혀있다. 송파 헬리오시티에 사는 사람들을 질투하고 있는 중이다. 주차비를 따로 낼 필요 없이 슬리퍼를 신고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와서 송파 책 박물관을 거니는 사람들을 특히 질투하고 있다.

송파책박물관, 김훈작가의 원고들과 완성된 소설을 넣어두는 철가방

단지 내 도서관처럼 위치하고 있는 송파 책 박물관은 다양한 방법으로 책을 전시한다.

책의 낱장을 연결해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한 책의 모습을 전시하기도 하고 원고지 꾹꾹 눌러쓰기 외길을 걸으시는 김훈 작가의 원고지와 원고를 보관하는 철가방 등의 작가의 물건을 훔쳐보는 듯한 전시는 와. 이런 걸 전시로 보다니! 소리가 절로 나온다.

송파책박물관

그리고 시대별로 이어지는 책문화, 베스트셀러, 책을 읽는 방식, 책이 있는 시대별 공간 등을 볼 수 있다. '조선시대 김 00은 같은 책을 100 독하고 아침부터 자기 전까지 책만 읽는 훌륭한 사람이었다..' 같은 전시 캡션을 읽다 보니 책 많이 읽는 걸로 칭찬받는 시대에 나도 남자 양반으로 태어났으면 좋았겠다. 요즘은 책만 읽고 있으면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있는 죄책감 같은 것에 심장이 따꼼거리고는 하는데 삼시세끼 누가 챙겨주는 밥 받아먹으면서 책읽고 가끔 누마루에 앉아 붓으로 난이나 치면서 책 읽으면서 깨달은 이야기와 맹자를 인용하며 드립치는 인생이라... 조선시대 양반으로 태어났으면 나 완전 핵인싸였을거 같은데.

송파책박물관 - 책을 쌓아놓은 모양을 하고있는 벽과 의자들이다. 의자에 책과 관련된 문구들이 귀엽게 적혀있는데 역시나 사진은 안찍었군
송파책박물관

송파책박물관의 하이라이트(?) 대공간의 모습이다.

저 계단형 좌석 양쪽 벽에 나있는 포켓공간들에 어린이들과 보호자들이 자유롭게 눕거나 앉아서 책을 읽고있고 상부층 난간 옆으로 보이는 노란기둥 사이에는 영화를 볼수있도록 노트북이랑 헤드셋이 설치되어있다.

개인적으로 와서 보기도 좋고 유아동반도 자유롭다. 아파트 커뮤니티 공간 성격과 박물관의 결합을 대하는 느낌, 여기서 평소 보기 힘든 두께의 '수학과 예술'책을 발견했다. 책종류도 다양하다.



#서울책보고

서울책보고

인스타에서 이런 사진을 몇번 보고는 왜 저렇게 긴통로를 이렇게 밖에 못찍나 했는데 진짜 직접찍어보니까 별 수 가 없다. 중간에 약간 웨이브가 있어서 이 길고 고불고불한 중고책 통로를 잘 잡아내는게 어렵다.

잠실새내역 공영주차장옆 저 공장처럼 생긴 건물은 무엇일까 지날때마다 궁금했었는데 내부에 이런 재미있는 공간이 있을줄이야.

서울책보고-시설안내

서울시에 흩어져있는 낡은 중고서점들을 이곳에 흡수시켰다. 이곳은 중고서점 이고 중고서적들을 자유롭게 볼수도 있고 열람할수 있는 매거진과 독립서적들도 있는 혜자로운 곳.

현대적인 건물과 낡은책의 간극이 있으면서도 진짜 책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기에 적합하다. 중고책 서가를 거닐다가 오래된 책의 1쇄 2쇄도 운좋게 발견할수 있다. 도서검색도 된다.

중고서적 밀림을 헤매다가 어떻게 된일인지 나는 한자 까막눈 임에도 불구하고 -미망- 두글자를 알아보고 이책을 뽑았다. 박완서 다시읽기 중인데 진짜 빨려 들어가듯이 1,2권을 구매해서 다 읽었다. 그런데 3권까지 있었다. 후... 저때 저 판형으로 3권 어디서 찾냐고 ;; 그리고 책 맨 앞 표지에 저 편지는... 91년도에 막내딸에게 선물받은책을 어머니가 중고서점에.. 파신건지. 제가 데려오게 되었네요 :)


책보고

그리고 이렇게 한켠에는 책을 읽을수 있는 공간과 독립서적에 대한 전시공간이 있다.

여기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출판된 독립서적들이 전시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책보고 - 생년문고

서울책보고 에서는 '생년문고' 라는 타이틀로 어떤 해를 주재로 그 해에 출판된 책을 랜덤으로 엮어서 선물용으로 판매중이다. 책 랜덤박스 같은건데 갈때마다 몇년도가 나와있는지 확인하는 재미가 있다.

2001년도 생년문고가 나와있을때는 책을 사랑하는 2001년생 조카에게 선물해주고 뜨거운 호응을 얻기도 하였다. 자주자주 들려서 내가 태어난 83년 생년문고가 나오면 선점해야겠다.


이밖에도 최근 중고서적구매는 물론 열람 섹션이 더 확충되어 읽을거리와 저렴하게 중고책 득템거리가 더 확장된것을 확인하고 왔다.



주절주절 써내려가며 책에 진심인 공간들을 나열하다 보니 이 세개의 공간들은 다 재방문을 부르는 하루로는 모자란 공간들이었다. 요즘 몇년만에 자유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는 나는 이렇게 지자체 세금으로 만든 이런 대단한 비상업 공간들과 민간이 만든 비상업 공간들 (추후 아카이빙 예정)이 예전보다 너무 많아져서 영감을 주는 공간을 찾아다니는 사람으로서의 일상이 알차다. 한 3~4년전만 해도 교보문고만 주구장창 갔었는데 말이다. 점점 책을 향유할 공간 너무 많고 나이는 자꾸 들고 영감을 주는 좋은 장소들 때문에 여생에 대한 집착은 깊어만 간다. (급작스런 유서분위기 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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