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업관리본부 최차장의 근황 (5)

요즘 자주 하는 말

by 최지원

이 글은 여성건축인 매거진『SOFA 5 - 혼자이지 않은 건축: 돌봄을 돌아봄』에 기고한 내용을 재편집한 버전입니다. 원문은 해당 매거진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요즘 자주 하는 말

아마 내가 걱정했던 일을 민감하게 사전 관리한다면 전혀 예상치 못한 또 다른 문제들이 발생하는 곳이 건설 현장이다. 종종 주변에 유사한 업무를 하는 지인들에게 이런 에피소드를 공유하고자문을 구하면 “감리는?”이라는 대답을 듣곤 한다. 내가 경험했던 현장의 감리 분들의 개성에 대해서는 말을 삼가겠다. 현장이 많아지고 현장의 어려움으로 잠을 설치고 현장의 감리나 현장인력이 부실하게 느껴진다면 건설관리 용역을 별도로 선정하는 것을 추천한다. 공사에 대한 세세한 점검 기록을 남길 수 있다. 결국 요즘 내가 자주 하는 말은 (예전에는 무책임하다 생각했던 말인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이유 있는 문장)

“저는 관리자지 기술자가 아닙니다.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서 의견 보내주세요.”



여러 스트레스가 담긴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나 공감으로 다가갈지 모른다는 느낌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지나간 일에 미화가 몇 스푼 첨가된 건지 내가 생각보다 일을 즐긴다는 감각이 느껴져 갸웃거리며 기록하기도 했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만 해도 건축주와 건축가가 티키타카 하며 만드는 건물이 아닌 그저 범용성에 천착한 프로젝트를 향한 반감을 더듬었다. 그런데 개발사업과 개인의 내재적 가치가 맞지 않아 고뇌했던 시기가 나도 모르게 나를 스쳐 지나가 버린 걸 기록하며 알게 되었다.

요즘 나는 개발사업에 꽤 재미를 느끼고 있다. 돈이 돌아가는 흐름을 보는 관점에서 건물을 짓는 일도 그렇고 (리스크 있지만 내 돈은 아님)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흥미로운 일이 생길 때가 많다. (사람 한 명이 책 한 권이라고 생각하고 한번 만나본다. 지나온 서사와 현재에 호기심이 생긴다.)

디자이너 집단을 나와 설계 시공 외에도 금융인, 중개인, 분양대행사, 광고회사, 컨설팅, 변호사, 감정평가사, 법무법인 등과 사업 하나를 놓고 동상이몽 속에 소통하며 함께 나아가는 상황도 흥미롭다. 매일 그저 회사에 죽지 못해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앞으로, 또는 옆으로 뻗은 길 위에서 걷거나 최소 서있다는 감각을 가지고 일하고 싶은 사람에게 내가 하는 일은 나쁘지 않은 직업이다.

글이 생각보다 꽤 거창하게 써진것 같지만 나 자신은 주어진 조건에서 여기저기 물어물어 해결방법을 찾아내며 하루하루 겨우 쳐내듯 일하는 수준의 실무자다. 그러나 업계의 일 잘하는 플레이어들을 접하며 대단하다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 내가 글 속에 나열한 미약한 몇 개 사례처럼 경계에 놓인 일을 발견해 미리 리스크를 사전 대응하고 실시간 텔레그램으로 현장 사진과 상황을 발주처에게 공유하는 시공사, 도면 관리와 해석능력을 위해 설계사 출신으로 구성된 시공사를 보유한 시행사, 컨설팅과 설계비에 큰 투자를 해서 동일한 공사비로 디자인과 공간 가치를 올리는 개발사업, 덜 유명한 지역에 감도 높은 브랜드 하나를 유치하기 100개 후보군에 접촉하고 성공시키는 사업도 있다. 최근도쿄를 방문하여 한 지역 내 여러 건물을 개발하고 보유하면서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부동산 개발 사례들을 둘러보기도 했다. 정해진 틀 속의 업무를 쳐내기도 벅찬 나에게 이런플레이어들의 이야기는 듣기만 해도 여름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잔 들이켠 듯한 개운함을 느끼면서 도전하고 싶게만든다.

나는 직접 건축 도면을 생산하는 사람에서 설계와 공사를 돌보는 일로 업무 전환을 한 사람이고 직접 설계를 하지 않는 사람이 되면서 결국 나는 40대에 아가리 건축가17가 되어버렸다고 약간은 스스로를 깎아내는 듯이 말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무엇을 직접 하는 사람만이 열심히 해서 돌아가는 세상이 아니기에 내가 하는 일에 효용감을 느낀다. (열심히 설계 중인 사람에게 부채감을 느끼면서 쓴다.) 한편으로는 요즘처럼 건축물을 만드는 일에 매료된 때가 없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내가 현재 하는 일이 내가 설계했던 건물, 그리고 내가 궁금해하던 건물이 지어지는 배경의 일들이 아니던가. 이제는 건물의 물리적 특성보다 배경과 자본, 그 뒤 건축주들의 스토리를 찾아다닌다. 물리적인 아름다움 뒤 건물이 지어질 위치를 선정하고, 치열하게 설계하고, 짓고, 사용자를 맞았을 건물이 새롭게 보이고 도시가 다시 읽힌다. 요즘 스스로를 시행사 주니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시행사에서는 3년 차니까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우겨본다. 주니어가 지나 5년 후 10년 후 앞으로 무슨 근황을 가지고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사업관리 본부 최차장의 근황은 이렇다.



17) 아가리 건축가: 입만 살아있는 건축가. 실제 프로젝트나 현장에서 실무 경험이 부족하

면서도 이론적인 이야기나 비판만을 하는 사람을 지칭하는데 사용됨.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사업관리본부 최차장의 근황 (4)